4·10 총선까지 50일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1차 공천 작업을 마쳤다. 닷새간 진행한 공천 면접을 거쳐 103곳의 공천을 확정 지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천 파동’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큰 갈등은 없다. 다만 현역 의원 컷오프(공천 배제), 수도권·영남권 후보 재배치 등 2차 공천 작업이 본격화되면 파열음과 잡음이 곳곳에서 터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의 공천 잔혹사가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뉴스1

20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공천 신청자가 있는 242개 지역구 중 본선 확정자는 103명(단수 추천 99명·우선 추천 4명)이다. 지역구 61곳은 경선을 실시하기로 했고, 78곳은 결정을 보류했다. 국민의힘 공천이 반환점을 돌면서 1차 공천 작업은 일단락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공천 결과에 대해 큰 파열음은 없다. 하지만 단수 공천과 경선 지역이 정해진 곳을 중심으로 컷오프(공천 배제)된 후보자들의 반발이 조금씩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진주을 선거구다. 현역인 강민국(초선·경남 진주을) 의원이 이번 공천에서 본인 지역구에 단수 공천되자, 이곳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같은 당 예비후보들이 반발했다. 김 의원을 단수 공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은 모두 공관위에 이의 신청을 한 상태다. 이는 비단 경남 진주을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50일 정도 남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 작업이 본격화되면 보류된 지역구 78곳을 중심으로 파열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천은 당 인재들을 지역구에 적재적소로 배치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후보 간 희비가 엇갈리면서 잡음이 날 수밖에 없다.

제15대 총선을 이끌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대통령. /조선DB

◇ 선거구 변화로 자연스레 생긴 단수 공천… 전략 공천 성공 사례는 15·17대 총선

국민의힘은 이번 공천에서 99명 후보자를 단수 공천했다. 단수 공천은 공천 후보자 사이의 지지율 차이가 클 때 경쟁력 있는 후보자를 한 명 추천하는 것이다. 지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법이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나온 개념이다. 그 이전까지는 중대선거구제로 한 선거구에서 의원을 두 명 뽑았던 탓에 같은 당에서 후보 두 명을 내보낼 수 있는 복수 공천이 존재했다. 타당의 후보가 입지가 약해 자당의 후보 역량이 둘 다 괜찮을 때 펼친 전략이었다. 하지만 ‘복수 공천’은 1988년 법 개정으로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게 단수 공천만 남은 자리에 이른바 ‘전략 공천(우선 추천)’이 등장한 건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지만, 여야가 전략 공천을 당헌·당규에 명시한 건 2004년 제17대 총선 직전이다. 전략 공천은 상대 당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적을 때 당 지도부가 당내 인물이나 외부 영입 인사를 공천하거나 지지율 우세 지역에 꼭 선출돼야 하는 정치인을 공천하는 방식이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전략 공천은 1996년 제15대 총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공천 작업이었다. 당시 신한국당 총재를 겸했던 김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 붕괴 등으로 인한 부정적인 여론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얼굴’을 대거 투입했다. 박성범·맹형규 등 TV를 통해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뉴스 앵커를 비롯해 ‘스타 검사’로 이름을 알렸던 홍준표 검사, 유명 재야인사인 이재오·김문수 등을 잇달아 영입했다. 신한국당은 정치신인인 이들을 수도권 지역구에 공천했다. 그 결과, 신한국당은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47개 지역구에서 24곳을 승리하는 등 선전했고 139석으로 원내 제1정당이 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전략 공천도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지휘하에 공천 개혁에 나섰다. 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김문수 의원은 박 위원장과 함께 전략 공천과 인적 쇄신을 필두로 중진 의원을 이른바 ‘숙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최병렬 대표, 서청원 전 대표, 박종웅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은 공천 과정에서 대거 탈락했고,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나경원 전 의원,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새로운 인물이 국회에 대거 입성했다.

2016년 3월 24일 총선을 앞두고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조선DB

◇ 李·朴 계파 갈등으로 무너지고 사천 논란에 실패한 與 전략 공천사

여당의 전략 공천이 늘 최고의 성적을 냈던 것만은 아니다. 계파 갈등에 따른 전략 공천은 공천 잔혹사(史)로 이어졌다. 그 시작은 2008년 제18대 총선 때였다. 친(親) 이명박계가 친(親) 박근혜계를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킨 것이다. 그 자리엔 친이계 사람들이 전략 공천됐다. 친박계는 이를 ‘공천 학살’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친이계가 득세하면서 이재오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은 ‘영남 40% 물갈이론’을 내세워 공천했다. 친박계 수장이었던 당시 박근혜 의원이 이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하면서 갈등이 일단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김무성·서청원·김기춘 의원을 포함해 친박계 의원 10명은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이후 이들은 친박연대·친박 무소속연대를 결성해 대부분 국회로 재입성했다. 친박연대는 당시 지역구에서 의원 6명, 비례대표로 8명이 당선돼 14석을 확보했고, 친박 무소속연대도 10명 이상 당선자를 내면서 선전했다.

이후 2012년 제19대 총선 공천은 친이계를 상대로 한 친박계의 정치 보복성 전략 공천뿐이었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권을 장악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현역 컷오프(공천 배제) 25%’ 원칙을 세웠다. 그 결과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안상수·진수희 의원 등 친이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들이 떨어진 자리는 친박계 인사들로 전략 공천됐다.

2016년 제20대 총선 공천도 마찬가지였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하면서 여당에서는 180석 이상 획득 가능성이 거론될 만큼 낙관적인 전망에도, 친박 대 비박으로 나뉜 격한 계파 싸움을 토대로 전략 공천이 이뤄진 것이다. 이른바 ‘진박(眞朴) 감별’로 인한 공천 파동이다. 비박계였던 유승민·이재오 의원 등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의결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옥새 투쟁’까지 벌였다. 결국 제20대 총선에서 눈살 찌푸리는 행태에 실망한 중도 보수 유권자 다수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면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이라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2020년 제21대 총선은 파국으로까지 갔다. 단적인 예가 강남 지역구 3곳에 대한 전략 공천이다. 당시 김형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관위원장의 사천(私薦) 논란이 불거졌다. 전략 공천에 본인 입맛에 맞는 사람을 넣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당시 강남을과 강남병에는 각각 최홍 전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사장과 김미균 시지온 대표가 전략 공천됐다. 하지만 최 전 사장은 이른바 ‘채권 파킹거래’로 금융감독원 제재를 받은 전력이 드러나면서 당시 최고위에서 공천 결정이 취소됐고,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친한 인사’였음에도 제대로 검증을 안 한 채 무작정 전략 공천했다는 이유로 김 위원장이 사퇴하기까지 했다.

국회의원 배지. /뉴스1

◇ 전문가들 “與, 공천 잔혹사 되풀이 끊어내려면 공정성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공천 잔혹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단수 공천·전략 공천 대상 결정이 미비한 점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의 결정에 탈락한 후보들이 반발하지 않고 납득할 수밖에 없는 명분으로 ‘공천 잡음’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 공천이었는가에 달려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이 이번에 적용한 ‘시스템 공천’을 살펴보면 기준과 가점, 감점 등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 다만 단수 공천 혹은 전략 공천을 한다면 해당 지역구 예비후보들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을 공천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며 “막무가내식 공천이나 밀실·비선 공천, 계파 갈등에 따른 공천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면, 국민의힘은 이번 공천에서 큰 잡음 없이 공정한 공천으로 총선 승리까지 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김성태 전 의원도 처음엔 반박했지만, 결국엔 수용하지 않았나”라며 “탈락한 후보자도 결과를 수긍하고 그 지역구에서 본인이 아닌 같은 당 다른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백의종군하는 모습 자체가 공천의 신뢰성까지 보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략 공천의 명분이 단순히 ‘특정 사람’ 꽂기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라며 “지역에 대표성이 있는 사람이 맞는지부터 전문성, 도덕성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사람이 전략 공천 혹은 단수 공천을 받는다면 반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