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52일 앞둔 가운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고금리에 지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표심 공략을 위한 공약 경쟁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76조원 규모의 기업 금융 지원 정책과 함께 금리 인하·대출 확대에 초점을 맞춘 소상공인 지원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영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인한 운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금리 대환대출 예산을 확대하고 소상공인 전문 은행을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공약을 발표했다. 여야의 총선용 공약 경쟁이 점차 격화되는 가운데 '퍼주기식 공약'이 남발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높은 이자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두 공약의 공통점은 고금리 경제 상황에서 이자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정부·금융당국의 협조를 바탕으로 금리 인하와 대출 확대 등을 위한 수십조원 재원 투입을 하는 반면, 민주당은 영세 소상공인을 집중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운영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픽=정서희

◇ 與,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에 76兆 투입… 서민·소상공인 위한 공약도

국민의힘은 최근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76조원 규모의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집권 여당인 만큼 정부와의 협력을 토대로 마련한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중소·중견기업의 고금리 부담을 덜고 정상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조4000억원을 지원하고, 이들의 신산업 전환을 위해 56조3000억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민의힘은 고금리 완화 정책으로 ▲연 5% 이상 고금리 대출의 금리를 1년간 최대 2%포인트까지 인하하도록 하는 5조원 규모의 은행 공동 '중소기업 전용 금리 인하 특별프로그램' 마련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3조원 규모의 '신속 정상화 금융지원 프로그램' 가동 ▲고금리 부담 완화를 위한 11조4000억원 규모의 금융 정책 공급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신산업 전환을 위한 정책으로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산업 전환자금 20조원 이상 지원 ▲반도체·2차전지 등 초격차 주력산업에 15조원 지원 ▲5조원 규모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 조성을 통한 국내 유턴 기업 지원 ▲중견기업 대상 15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위한 5대 은행 공동으로 5조원 규모의 '중견기업 전용 펀드' 구성 ▲2조원 규모의 회사채 유동화 프로그램 운영 통한 첨단전략산업 분야 중견기업의 직접 금융 지원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 대상 단계별 맞춤형 보증금 2조원 규모 지원 등을 마련했다.

국민의힘은 중소기업의 신산업 분야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설비 투자에 21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 ▲신산업 분야 진출 희망 중소기업 대상 은행별 우대금리 자금 2조원 지원 ▲정책금융기관의 16조3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 우대금리 조건 제공 등도 추진한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번 76조원 규모 대책에는 5대 은행이 총 20조원 규모로 동참하는 등 민간은행이 맞춤형 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며 "정부도 기업금융 관련 규제를 합리화해 기업금융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서민·소상공인을 위한 공약도 발표했다. 이는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재형저축(근로자 재산형성저축)' 재도입 추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 2.5배 확대 ▲예금자 보호 한도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조정 ▲대출 상품 조회·선택·보증 신청·대출 실행 등 '원스톱' 지원 가능한 서민금융 종합플랫폼 구축 ▲인터넷전문 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목표를 '말기 잔액'에서 '평균 잔액'으로 전환 ▲대안신용평가 활성화 및 낮은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원스톱 대환대출시스템' 활성화 등이 담겼다.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 ▲온누리 상품권 연간 발행 목표를 기존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 ▲소상공인 점포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50% 신설 ▲지역 신용보증재단 올해 보증공급액 2배 확대(10조원→20조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정책자금 목표액 확대(2조7000억원→8조원) ▲소상공인 산업재해보험 지원을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은 설 명절을 앞둔 5일 민생 행보에 나서면서 각각 서울 경동시장 방문 때와 광주 양동시장을 찾았을 때의 모습. /뉴스1

◇ 野, 영세 소상공인 고금리 부담 완화에 방점… 에너지바우처 제도 신설도 추진

민주당은 높은 금리로 경제적 고통을 겪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내일채움공제'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높은 이자율에 대한 부담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매출이 늘어나는 쪽으로 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고금리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상공인 대상 정책자금을 2배 이상 확대 ▲저금리대환대출 예산 증대 ▲장기·분할상환 대출 프로그램 도입 ▲소상공인 에너지바우처를 도입해 전기·가스 요금 등 지원 및 임대료 지원 ▲간편결제 수수료 부담 완화 ▲무분별한 관리비 인상 제한 등 이른바 '고정비' 낮추는 방안 제시 등을 추진한다.

또 민주당은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증대하기 위해 ▲소비 진작을 위한 지역화폐 예산 확대 및 국고지원 상시화 ▲온누리 상품권 사용처 및 가맹점 확대 ▲전통시장에 국한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적용 범위를 지역화폐와 온누리 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모든 소상공인 점포로 확대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등으로 폐업한 소상공인의 재기를 위해 ▲폐업지원금을 최대 25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상향 ▲폐업 시 대출금 상환 유예 ▲소상공인의 폐업·사망·노령 등으로 인한 노란우산공제금 수령 시 비과세 적용 ▲소상공인 전문 은행 도입 및 '소상공인 내일채움공제' 등을 통한 목돈 마련 지원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라인플랫폼 입점사업자·가맹점주·대리점주·수탁사업자에 단체등록제와 단체협상권 부여 및 플랫폼서비스 사업자 대상 규제 강화 내용이 담긴 법) 제정 등을 하기로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소상공인연합회와 정책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정부 실책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며 "경제가 어려우면 경기 침체로 피해보는 영역에서 지원이 있어야 했는데, 정부는 서민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결국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경제가 악화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소상공인이 살아야 경제 실핏줄이 살고, 경제 실핏줄이 살아야 경제 체질도 튼튼해진다"며 "핵심은 매출이 늘고 비용이 줄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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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野 금리 완화 공약 발표에 은행권 '몸살'… 전문가들 "선심성 공약 남발서 옥석 가려야"

문제는 재원이다. 여야가 '민생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으로 금융지원책을 내놓자, 당장 은행권의 부담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이미 지난해말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원 민생금융 지원방안 발표로, 은행들은 소상공인에게 1인당 최대 300만원 한도로 이자를 환급해주고 있다. 은행이 소상공인에게 돌려주는 총 이자 규모는 1조6000억원이다. 해당 금액들은 전부 은행들의 비용으로 처리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 대손비용 증가로 은행의 영업 여건도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일제히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의 금리 부담 완화 대책을 공약을 내놓자, 은행을 '공공재'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시도에 대해 비관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상생 금융 정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초부터 정책으로 내놓고, 공약으로 발표하면 금융권에는 압박처럼 읽히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며 "취지는 정말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을 봐야 하지 않나.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상생 금융 정책 대상은 소상공인 대상이었지만 그게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라며 "총선용 공약이 실제 정책 가이드라인으로 나오면 더 부담이 될 것 같다. 기업이 대상인 만큼, 은행에서는 '이자 캐시백'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재 금리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을진 의문이다. 4년 전 저리 대출 대상이었던 소상공인들이 오른 이자율로 지금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총선이 본격화되면 여야가 앞다퉈 내놓은 고금리 부담 완화 공약과 같은 '선심성 공약' 남발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표심을 공략한다는 명목으로 여야 모두 '표부터 얻고 보자'는 심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에 여야가 내놓은 공약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에 금리를 인하하고 재원을 출현하는지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모든 기업을 다 지원한다면 시장에서 퇴출돼야 하는 기업이 '좀비기업'처럼 살아남을 우려도 있다"며 "(그 모든 걸 고려하면서) 여야도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 일단 예산 쓸게요, 은행권에 요청할게요 등 질러놓기만 하면 수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은 항상 있어왔다. 결국 여야가 공약을 남발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선용 공약이라고 해도 이런 정책을 내놓는 것 자체는 좋다고 본다. 금융권에서 금융 취약계층이나 중소기업 등을 지원하는 게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공공성 등을 정책으로 제고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면서도 "부작용까지 고려한 공약인지는 의문이다. 정책을 내놓을 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설계로 윈윈(Win-win)하는 방향으로 추구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선용으로 단기적 표심만 이끌고 원칙은 없고 돈만 쓰겠다는 건 금융권에 비용을 전가하고, 그 비용은 다시 사회로 전부 전가되는 악순환만 낳을 뿐"이라며 "총선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공약으로 공적인 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인지를 유권자들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