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불과 79일 남은 가운데 소위 '김건희 리스크'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측근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불편함을 내비치고 대통령실의 사퇴압박설까지 제기되면서 여권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한 위원장이 22일 사퇴설을 일축한 직후 윤 대통령은 오전 민생토론회 참석을 돌연 취소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며 "사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저녁 한 위원장은 사퇴 요구 관련 보도에 대해 문자 공지를 통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퇴 권고를 거부함과 동시에 대통령실과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이에 따라 신구 권력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위원장은 이날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선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바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진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다섯 번째 민생토론회에 윤 대통령이 불참한다고 문자로 공지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국민 약속을 취소할 만큼 윤 대통령의 고심이 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 사태가 터진 배경에 대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선 거론된다. 한 위원장은 최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소신 발언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권 일각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한 위원장 입장이 나온 후 본지 통화에서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 여사 관련 발언 때문에 사퇴를 요구했다는 시각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문제로 언급한 한 위원장의 공천과 관련된 당사자인 김경율 비대위원이 지속적으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관련이 없다고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김 비대위원은 김 여사를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기도 했다. 여기에 한 위원장도 최근 소신 발언을 시작하며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그간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리스크에 대해 "국가 귀속물로 포장을 뜯지도 않았다. 오히려 김정숙 전 영부인은 청와대에서 나갈 때 접시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갔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김건희 여사 입장에서는 소위 '함정 몰카' 외에도 억울한 면이 있다"는 식으로 알음알음 여론전을 편 바 있다. 친윤계 의원들의 "윤 대통령이 사과하면 민주당이 물어뜯을 것"이라는 기조와 비슷한 방향이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김 여사 리스크가 총선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윤 대통령이 더 이상 외면하고 침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년 기자회견이든 언론사 인터뷰든 약식 간담회든 본인 입장 발표든 자진해서 털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본인이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본격적인 공천 시즌을 코앞에 두고 여당 내홍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도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위험한 상황"이라며 "한 위원장이 당내에서 밀려나게 한다면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김 여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리하는게 좋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립대 교수는 "전날까지만 해도 극적 반전을 꾀한 양측의 '밀당'이라고 봤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듯하다"며 "결국 윤 대통령이 입장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