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불과 79일 남은 가운데 소위 '김건희 리스크'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측근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불편함을 내비치고 대통령실의 사퇴압박설까지 제기되면서 여권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한 위원장이 22일 사퇴설을 일축한 직후 윤 대통령은 오전 민생토론회 참석을 돌연 취소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라며 "사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저녁 한 위원장은 사퇴 요구 관련 보도에 대해 문자 공지를 통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퇴 권고를 거부함과 동시에 대통령실과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다.

이에 따라 신구 권력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위원장은 이날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선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바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진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다섯 번째 민생토론회에 윤 대통령이 불참한다고 문자로 공지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국민 약속을 취소할 만큼 윤 대통령의 고심이 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 사태가 터진 배경에 대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선 거론된다. 한 위원장은 최근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소신 발언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권 일각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한 위원장 입장이 나온 후 본지 통화에서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 여사 관련 발언 때문에 사퇴를 요구했다는 시각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문제로 언급한 한 위원장의 공천과 관련된 당사자인 김경율 비대위원이 지속적으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관련이 없다고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김 비대위원은 김 여사를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기도 했다. 여기에 한 위원장도 최근 소신 발언을 시작하며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그간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명품 가방 리스크에 대해 "국가 귀속물로 포장을 뜯지도 않았다. 오히려 김정숙 전 영부인은 청와대에서 나갈 때 접시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갔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김건희 여사 입장에서는 소위 '함정 몰카' 외에도 억울한 면이 있다"는 식으로 알음알음 여론전을 편 바 있다. 친윤계 의원들의 "윤 대통령이 사과하면 민주당이 물어뜯을 것"이라는 기조와 비슷한 방향이다.

영국·프랑스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김건희 여사와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김 여사 리스크가 총선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윤 대통령이 더 이상 외면하고 침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년 기자회견이든 언론사 인터뷰든 약식 간담회든 본인 입장 발표든 자진해서 털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본인이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본격적인 공천 시즌을 코앞에 두고 여당 내홍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도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위험한 상황"이라며 "한 위원장이 당내에서 밀려나게 한다면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김 여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리하는게 좋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립대 교수는 "전날까지만 해도 극적 반전을 꾀한 양측의 '밀당'이라고 봤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듯하다"며 "결국 윤 대통령이 입장을 직접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