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한 달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불신임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한 위원장은 다시 한번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총선이 79일 남은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가 정면충돌하자 당내에서는 당황스러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당은 당의 일을 하고, 정부는 정부의 일을 하는 것이 정치"라며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며 사실상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다시 한번 일축했다. 이어 "선민 후사하겠다"며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지낸 친윤(親尹)계 이용 국민의힘 의원(초선·비례)은 전날(21일) 여당 의원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하고 위원장 거취 문제는 당에 결정을 맡기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넷 매체 쿠키뉴스 보도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사과 불가론'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공천 문제'로 촉발됐다.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 지역구에 투입하려 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 잡음이 일자 '사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최근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발언하는 등 김 여사 명품 가방 의혹 대응 문제에서 대통령실과 입장 차이가 발생하자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많다.
친윤계에서는 이날 한 위원장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이 이어지지 않고 있지만 다선 의원과 원외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 창원·의창을 지역구로 둔 5선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찾아온 정권인가"라며 "한 위원장은 개인 이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과 당원의 신뢰를 상실하면 선출직 당대표도 퇴출된다. 하물며 임명직 비대위원장은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라며 "표면상 갈등이지만 빨리 수습 하라"고 촉구했다. 또 신평 변호사도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반면 수도권 의원들과 당내 일각에서는 한 위원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여당 내에서 한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강남병이 지역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방선거 서울시당 공천 때) 모 인사들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공천을 하지 않을 것이면 내쫓겠다는 식의 협박을 받았다. 기분이 많이 상했다"며 "당선인의 뜻이라고 팔았지만 모두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인간들의 거짓이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을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면 된다"고 했다.
태영호 의원은 이날 채널A 유튜브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한 위원장의 사퇴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관해 "윤석열 대통령이 김 여사와 손잡고 국민 앞에 나아가 '국민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실수를 했는데 가장 큰 책임이 남편인 저에게 있다'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면 어떨까 생각한다"라고도 주장했다.
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도 "총선 79일 앞둔 지금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 끝까지 가야 한다"며 "자멸, 공멸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민 의원은 이날 유튜브 '강펀치'에 출연해 "만약 한동훈 위원장이 사퇴한다면 국민의힘은 풍비박산"이라며 "윤 대통령도 국정을 제대로 끌어갈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몇몇 의원들이 윤 대통령 편든다고 한 위원장을 비판한다면 속된 표현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엿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갑에 출마하는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YTN 뉴스라이브에 출연해 "한 위원장은 선민 후사,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입장이 분명하다"며 "강제로 위원장을 끌어내리는 모양이 나오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