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큰 과제였던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연말 임시국회는 여야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 관련 특검법부터 국정조사, 2기 내각 부처 장관 인사청문회까지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제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여야 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21일 본회의에서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법정 시한(12월 2일)을 19일 넘기고 나서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정부 원안 대비 4조2000억원이 줄었지만 다른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여야 간 절충점을 찾아 총 지출액은 정부 원안대로 유지하게 됐다.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형성된 훈훈했던 여야 협치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연말 임시국회가 직면한 과제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일만 남았다. 민주당은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과 국정조사 3건(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사건) 등을 오는 28일에 예정된 본회의에서 밀어붙이겠다고 밝혔다. 연말 정국에서 쥔 공세 주도권을 내년 총선 때까지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의힘은 특검법을 반대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민주당이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조사하려는 사안들은 모두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 중이거나 이미 수사한 사안 또는 단순 의혹에 불과하다”며 법적 정당성 없이는 특검도, 국정조사도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 당 지도부는 ‘반(反)헌법적인 악법’, ‘총선을 앞둔 정치공세’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야당 주도의 쌍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가능성도 크다.
연말까지 계속되는 인사청문회도 여야 정챙의 최전설이 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 2기 내각 구성을 위한 밑작업인 상황에서 야당은 공세를 대대적으로 예고한 바 있다. 특히 오는 27일 예정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는 대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기 ‘특수통 검사 출신’이자 ‘윤 대통령의 직속 상관’이라는 점을 들어 ‘부적격 인사’로 규정했다. 대통령 측근으로서 중립성이 없다는 점을 포함해 국민권위원장 겸직’과 ‘업무 부적합성’ 등을 문제로 제기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윤 정부 2기 내각 구성 안정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권 집중 공세로 국정 운영의 새로운 동력이 타격을 받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엄호할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신임 장관 후보자만 무려 6명이다. 야당에서는 6명 후보 전부 ‘부적격’이라고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 6명 전부 다 낙마하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늦어진다거나 본회의 의결 과정이 밀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까지 3개월 앞둔 상황에서 여야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정쟁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괜한 어쭙잖은 협치로 지지 세력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보다 확실한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뿐만 아니라 총선 정국 주도권 싸움이 시작된 만큼 여야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게 된 탓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예산안은 서로 주고 받을 게 있었고 정해진 시한 내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여야 모두 받아야 했던 터라 공동의 목표 하에 합의했다고 본다”면서 “다만 거대 양당 모두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의 기대를 잃지 않기 위해 조금은 무리하는 선까지 한 치의 타협 없는 극한 대치로 일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은 용산을 흔들어서 여당에 불리한 구도를 만들고 내년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주도권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특검법 추진이나 인사청문회 공세가 그 일환”이라며 “내년 총선 간판 구도는 ‘윤석열 vs 이재명’ 아닌가. 이 구도에 맞춰 여야도 계속 극한 대립 상황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이번 국회에서는 협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이 난맥상을 거듭하는데도 대통령도 야당과 영수회담 추진 등 협치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역대급 대립 구도가 이어졌고, 와중에 서로 감정의 골도 깊어지니까 극한 대치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당마다 핵심 지지층이라고 인식하는 세력들도 양극단으로 치우쳐 있다 보니,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 대립도 극단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