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남자의 시선은 정돈된 외모와 달리 불안한 듯 쉴 틈 없이 주변을 살펴댔다. 그를 만난 곳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아니었지만 공개된 장소여서일까, 그는 자신의 차에 올라 문을 닫을 때까지 경계를 풀지 못했다.
경기도청 7급 공무원에서 이재명·김혜경 부부의 법인카드 불법 사용과 불법 의전을 터뜨린 공익 제보자 A씨로,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이재명 경기도 법인카드 부패 행위를 신고하며 마침내 자신을 드러낸 조명현씨.
2021년 겨울 첫 공익 제보 이후 지금까지 만 2년이 넘는 동안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고, 그는 얼마나 무거운 시간의 무게를 견뎌야 했을까.
조선비즈가 조씨를 만나 ‘법카의 신공’이 펼쳐진 그날의 일들과 그가 당한 조직 내 갑질, 그리고 최근 이어진 검찰 조사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봤다.
-책을 내고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나선 계기가 있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저지른 불법을 자세히 알리고 싶었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이나 불법 의전의 핵심 실체는 배우자 김혜경씨와 비서실 5급 공무원 배소현씨가 아니다. 진짜 몸통은 이재명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익을 위해 세금을 유용해 쓴 것은 커다란 범죄다. 당연히 용서를 구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다. 개인 한 사람의 일탈로 끝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돼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의 추악한 실체를 국민들이 상세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섰다.
공익 제보를 했지만 주변에서 공격을 많이 받았다. 뜻하지 않은 욕을 먹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명예회복을 할 계기도 있었으면 했다. 공익 신고의 대가는 잔혹, 그 이상이다. 일상은 꿈꿀 수도 없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도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재명 부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성남문화재단에서 일하던 2010년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되고 그가 재단의 당연직 이사장이 되면서 그들 부부와의 ‘악연’이 시작됐다. 내 업무는 공연 기획과 진행, 안내 직원 관리, VIP 의전 등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시장 이취임식을 진행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성남시장 취임식 때 이재명·김혜경 부부를 처음 대면했다.
김씨는 이재명 시장 취임 후 성남시 간부 부인 모임 등 여러 행사를 성남문화재단 공연장과 미술관, 재단 VIP실에서 자주 열었다. 그들의 행사에 필요한 일정 조율과 식당 예약, 동선 안내, 마무리 등을 내가 맡았다.
이 시장과 김씨를 안내하고 의전을 도맡다 보니 나는 이재명 부부, 그리고 시장 비서진들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직원이 됐다.
그리고 2018년 은수미 성남시장이 당선되면서 전임 시장을 의전했던 내 입지가 줄어들었고 버티다가 2020년 하반기에 재단을 나왔다. 몇 달 후 이재명 비서인 배소현씨로부터 경기도청 7급 비서관 자리를 제안받으면서 이재명 부부와 다시 이어지게 됐다.”
-의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나?
“그땐 잘못이 있는지 몰랐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다들 말이 없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시장 배우자가 공무원이 운전해 주는 관용차를 타고 와도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재단에서 직급이 높은 분들과 시청 공무원들이 알아서 배우자의 의전까지 챙겼으니 그때는 김씨 의전도 당연한 거라 여겼다.”
-공익 제보를 결심했던 당시 상황은 어땠나?
“불법 의전이란 것을 알게 된 건 2021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대선 후보가 되고 그해 12월 김혜경 불법 의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충격이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불법에 동원됐다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익 제보를 하라고 권유한 아내가 결정적으로 힘이 됐다.
하지만 제보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반대 당(국민의힘)도 찾아가 보고 언론도 만나봤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고, 상대도 쉽게 받아줄 상황이 안 됐다. 수사 기관을 찾기도 어려웠다. 제보 후에 있을 파장을 생각하니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증거 자료들도 먼저 공개할 수 없었다.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했다.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조치가 필요했다. 위협이 더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회유와 협박은 없었나? 신고 후 이재명 부부와 측근들의 연락은?
“공익 제보 초반엔 연락이 왔다. 언론 보도가 나오고 나서 배소현씨를 비롯해 이재명 전 수행 비서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투를 들어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들이었다. 협박이라 느껴졌다.”
-불법 의전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부적절한가?
“뭐 하나 부적절하지 않고 황당하지 않은 사례가 없다. 한 주에 3~4번씩 시장 배우자가 즐겨 먹는 초밥과 고기, 샌드위치, 과일을 주문해 자택으로 배달해 주고 결제는 ‘카드깡’으로 한다거나, 주말에 청담동 미용실에서 파는 고가의 일본 샴푸를 사다 주거나, 에르메스 로션이나 고가의 수입 화장품 등 공무원 법인카드로는 구매할 수 없는 물품 등을 개인 카드로 결제하면 나중에 비서실에서 현금으로 비용처리를 해준 이야기들은 새로울 것도 없을 정도다.
주말에는 공관에 나와 이재명 지사의 속옷과 양말, 이불까지 빨아야 했다. 가사도우미란 생각까지 들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이재명 지사 혼자 또는 부부가 먹을 ‘휴일 수라상’까지 차려야 했다. 휴일에 혼자 먹는 한 끼 식사조차 그는 직원들을 출근 시키고 법인카드를 긁게 한 사람이다.
청담동 일제 샴푸뿐 아니라 약, 누룽지, 마스크, 즉석밥, 핫팩, 배우자 생일 선물에도 세금인 경기도 법인카드를 긁었다. 이 지사와 그의 장모, 막냇동생, 여동생, 처남에게 명절 선물로 한우와 사과 배를 보내는데도 공무원 법인카드가 동원됐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과 성묘 세트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조상 제사도 법카로 해결한 사람이다.”
-불법 의전은 얼마나 조직적이었나?
“비서실의 공식적인 조직으론 정무와 정책을 조율하는 정무팀과 이 지사의 수행을 전담하는 의전팀이 있다. 의전팀은 다시 ‘지사님팀’과 공식 이름은 아니지만 ‘사모님팀’으로 나뉜다. 지사님팀에 수행비서 2명과 운전 담당 비서가 있고, 내가 배소현씨와 함께 김혜경씨 의전을 전담했다.
하지만 실제론 마약 밀매 조직이나 보이스피싱 집단처럼 점조직으로 운영됐다. 의전이란 같은 일을 해도 연관자들이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어떤 맥락에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비서실 안에 있어도 일을 시킨 사람과 당사자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거나 알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얼마나 지능적인 수법을 썼나?
“이들은 이재명 부부 의전에 조달할 비용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비용처리를 하고, 사용 금액이 커지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있다.
각 부처에 할당된 예산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고 필요에 따라 갹출하는 것은 ‘높은 분’의 지시와 묵인이 없으면 공무원 조직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법인카드 부패의 몸통이 이재명 대표라는 방증이다.
경기도 법인카드 부정 사용에 대해 이재명 대표가 나를 상대로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것도 내가 가진 증거들 앞에서 스스로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법인카드 유용의 끝판을 봤다. 그들 부부는 ‘법카의 달인’이었다.”
-내부고발 이후의 삶은 어떤가?
“일상, 아니 삶 자체가 무너졌고 사라졌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나와 가족들의 신변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측근들이 하나둘씩 잇달아 ‘큰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며 솔직히 무서웠다. 처음 제보 후엔 아내와 이틀에 한 번씩 모텔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차 제보를 했을 땐 아예 일을 못 했다. 내부고발자란 주홍 글씨까지 새겨졌다. 공익 제보라 하더라도 세상의 시선은 따가웠다. 프락치란 비난도 받았다. 내부고발자를 흔쾌히 받아주는 회사도 없고 신변 안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라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6개월 정도 야간 택배 일을 하다가 얼마 전 크게 다쳤다. 팔을 올리거나 상체를 쓰는 데 불편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다.
그래도 고맙게도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다. 검찰 참고인 조사 때도 혹시 모를 일이 생길까 봐 그들이 옆에 있어 줬다.”
-후회는 없었나?
“(공익 제보를) 안 했으면 더 후회했을 거다. 그는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다. 사익을 위해 세금을 유용한 사람이 만약에 대통령이 됐다면, 그가 저질렀던 불법이 모두 묻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이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당선되고 심지어 당 대표까지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 뒤에서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겠다던 정치인의 모습이 그래서는 안 된다.”
-검찰 조사에선 어떤 것들을 말했나?
“지금까지 여덟 차례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앞으로도 주 3~4회씩 참고인 조사가 예고돼 있다. 지금까지 내가 제출한 증거 자료들을 토대로 검찰이 당시 상황 등에 관해 상세히 조사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답하고 있다. 구체적인 답변 내용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법카 고발의 끝은 어떻게 될까?
“불법의 진실을 명백히 밝히고 당사자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고발의 끝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가진 권력과 수단을 이용해 최대한 시간을 끌고 피하려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본다. 수사 기관이 철저히 조사하면 진실이 드러날 거라 기대한다. 권력자라도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정상적인 나라다.”
-앞으로의 계획은?
“힘없는 소시민으로서 살아있는 권력과 싸우는 상황이다. 개인적 삶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아내의 권유와 도움으로 시작한 힘든 싸움이다. 나를 지지해 주는 분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든 상황이지만, 잘못한 사람이 책임지고 벌을 받는 ‘당연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개인적 삶을 생각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갖고 있는 증거와 증언, 팩트를 가지고 부패의 진상을 밝히려 노력할 거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세상을 바꾸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