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대립만 반복한 21대 국회가 민생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에 공감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정쟁이 아닌 가치 경쟁으로 국회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국민의힘 현역 최다선(5선) 의원인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부의장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정 부의장은 “나의 두 아들도 정치 혐오자에 가깝다.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족수를 줄이고 불체포 등 특권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정 부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여야 중진과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접어드는 여당에는 공정한 총선 공천관리 시스템 마련을 주문했고, 야당에는 탄핵 정국 조장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김종필(JP) 전 총리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정 부의장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40대 장관(해수부)을 역임한 인물이다. 5선 국회의원이었던 부친 정운갑 의원과 ‘40대 장관(농림부) 부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정 부의장은 내년 총선에서 본인 지역구인 청주시 상당구에서 6선에 도전한다. 이를 앞두고 31년 정치 생활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정 부의장에게 최근 국내 정치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우택 국회 부의장이 13일 국회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최근 자서전을 출간했다. 세 번째인데 왜 쓰게 됐나.

“정치 생활을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활력이 되는 동력을 만들고 싶었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결단과 도전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놀라운 은혜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색소폰으로 불기도 한다.”

―과거 직접 택시를 몰며 시민들과 만난 적이 있다고 썼다.

“2011년 택시 면허를 땄다. 당시 사이버대 총장을 하고 있었다. 6개월 정도 매주 토요일마다 4~5시간씩 운전했다. 손님이 타면 미터기를 눌러야 하는데 500미터를 그냥 가니까 ‘초보신가 봐요’라는 얘기도 들었다. 40분간 손님 못 태우고 도로를 헤맬 때도 있었다. 한 공무원이 승객으로 타고 나를 알아보고 내리려고 한 적도 있다. 많은 시민의 애환을 피부로 느꼈다.”

―‘한국의 케네디 가문을 꿈꿨다’는 부분에서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케네디를 정치인으로서 흠모했다. 흔히 나를 금수저 집안이라고 안다. 그러나 사회에서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노력 없이 산 사람은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못 된다. 노력이 중요하다.

나는 정치인 가문 출신이다. 한때 자식들까지 훌륭한 정치인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사내(아들) 둘이 모두 정치를 혐오한다(웃음). 아쉬움이 컸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자식들과 좋은 가정 꾸리는 게 행복이라고 지금은 믿는다.”

―JP의 ‘대화와 타협’을 적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JP 타계 5주기 추도사를 했다. JP는 정쟁이 아닌 여유와 여백의 정치, 해학의 정치를 했다. 분열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화합을 추구했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대화와 타협, 소통이 전부 상실된 상태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현 정부 발목잡기만 한다. 심하게 말하면 윤석열 정부를 저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외나무 다리 정치’만 추구하고 있다.

여야가 윈윈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선 그런 모습은 완전히 실종돼 안타깝다. 보다 큰 정치를 해야한다.”

―언제부터 작은 정치가 됐다고 보나.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그 앞 집권자들을 적폐로 몰았다. 종북 좌파 인물들이 득세함으로써 자유 우파를 소멸시키려 했다. 나 아니면 다 적으로 보는 정치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박근혜, 이명박, 박정희, 이승만을 제거 대상으로 삼은 행태였다. 제 눈에는 뚜렷히 보였다.

일본과 미국은 다선 중진이 의회를 이끈다. 물론 신진세력도 필요하지만, 국회가 이뤄온 전통하에서 새로운 걸 추구하는 온고지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여당 중진과는 물론 야당이라도 양질의 중진들과는 소통해야 한다. 여야를 넘나들며 소통의 정치를 통해 국회 상황을 원만히 이끌어야 국정과제도 현실화 할 수 있다.”

정우택 국회 부의장이 13일 국회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셨다. 새로 맞이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제일 중요한 자격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정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 두 번째는 민심을 제대로 읽는 능력, 세 번째는 당이 가진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것들을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경우에는 민심을 파악하는 원석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 위원장은 당 지도부라든지 핵심 인물들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 지적한 부분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행되고 있다고 본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어떻게 평가하나.

“총선 승리를 위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이다. 장 의원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선당후사와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는 훌륭한 결정을 했다. 이것이 우리 당의 총선 승리에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당 대표직만 내려놨다.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데 대한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놨다고 본다. 본인의 출마 여부는 공관위 결정에 맡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공정과 상식의 시대정신에 따라서 당선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인사의 척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세간에서는 인사에 대해 새로운 인물발굴이 필요하고, 검찰 인사가 과다하다는 우려가 있다. 아직도 문재인 정권 당시 임명됐던 인사들이 그대로 요소요소에 남아있는 데 대한 지적도 많이 나온다.”

―어떤 참모의 역할이 중요한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성과를 이룬 데에는 이원종 정무수석의 힘이 컸다. 전임 이진복 정무수석도 대통령에게 진언은 못 했다. 정무수석의 말은 어떤 말도 대통령이 들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골라 앉혀야 한다.

아울러 정무수석은 각 지역별로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의원이 있어야 한다. 정무수석실 차원에서 국가 지도를 그리고 지역 현안과 민심을 분석해야 한다. 진실하게 얘기하고 민원도 해결하고 그런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올해도 국회가 민생을 도외시한다는 질타가 많다.

“국민 질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연말 예산 정국인데 지난 9일까지 소위 가동도 안 됐다.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 정당에서 탄핵 남발 정당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남미에서는 탄핵으로 페루와 아르헨티나가 크게 망가졌다. 탄핵은 마지막 수단이다. 더구나 민생과 무관하지 않은가.

사정이 이러니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보일 수밖에 없다. 대화의 창구가 열려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난망하다. 국회부의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선거에서 충청 지역 지지율이 중요하다. 지역구 분위기는 어떤가.

“충북은 8석이다. 과반 또는 한 석이라도 많은 다수당이 되기 위해 청주에서 노력 중이다. 대전은 7석인데 대전과 세종시는 현재 1석도 없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하고 충남에서도 절대 다수의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어야한다고 본다.”

윤재옥 국민의힘 대표권한대행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중진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우택 의원, 윤 대표권한대행, 주호영 의원, 정진석 의원, 이만희사무총장. /뉴스1

―여권의 내홍은 잘 마무리될까.

“당연히 마무리된다고 본다. 혁신위의 혁신안이 나오고, 혁신안에 따른 후속 행동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예방주사를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가 민심을 얻을 반전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정책을 선점하고 제대로 된 혁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의원들도 당을 위해 선당후사, 살신성인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이다. 당심에 의한 공천을 하지 말고 주민들이 원하는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사심에 의한 공천이 이뤄지면 안 된다. 도덕성의 잣대는 철저하게 지키고 지역구 당선 가능성을 중심으로 인물을 봐야 한다. 의정활동, 당무 평가 등을 다 따지기에는 상황이 급박하다.”

―윤핵관이 가면 검핵관이 득세할 거라는 야당 측 주장도 있다.

“야당의 희망사항이다. 윤 대통령은 전문성, 실력,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공정하고 상식적인 절차를 거쳐 뽑을 것이다. 다만 검찰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경우 총선에서 비대위원장 또는 선대위원장 등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붐’을 일으키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체제는 어떻게 될까.

“총선까지 갈 수 없다고 본다. 본인 사법 리스크는 법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확실한 건 민주당은 분열될 것이다. 비명계는 이미 공천을 못 받는다는 걸 안다. 이낙연 신당이 내년 1월 나오면 이재명이랑 싸우고 출마해야 하는 분들이 힘을 합칠 것이다. 호남에서 그 당이 현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 이미 금이 갈 대로 갔다.”

―국회의원 수와 특권을 줄어야 한다고 보나.

“지난 16대 국회에서 273석으로 줄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후 첫 국회였다. 국회의원 숫자로 얼마나 적정하느냐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줄이는 방법으로 국민의 호응이 있을 것이다. 불체포 등 특권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제에 대한 소신은.

“개인적으로 비례대표는 병립형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표는 권역별 병립형으로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 어쨌든 지난번처럼 위성정당 출현이 불가피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개편되어야 한다. 이미 국민이 본 것처럼 위성정당은 국민을 기만하는 제도다.”

―앞으로 포부는.

“대한민국이 오는 2045년 광복 100주년까지 주요 3개국(G3)으로 도약하려면 절대 중진국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 나라의 공통점은 정치적 불안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정치를 안정화해야 한다. 이어 정쟁이 아닌 가치경쟁으로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