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총선 승리가 절박하다”며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총선을 4개월 앞두고 여권의 인적 쇄신이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다. 향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관건이지만, 당으로서는 22대 총선에서 ‘혁신 주도권’을 확실히 쥐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윤(親윤석열 대통령) 핵심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맞물려 ‘친윤·당대표 2선 후퇴’ 명분을 확보해서다. 정치권의 시선은 이제 ‘야당 대표’를 향하게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김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후 거취를 고심하며 잠행한 지 이틀 만이다. 김 대표는 “지난 9개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신(新)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진심을 다해 일했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소임을 내려놓게 되어 송구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배패, 저조한 당 지지율, 인요한 혁신위 조기 해산 등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라며 “더이상 제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되면 안 된다.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빠르게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가 직을 내려놓은 건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지 9개월 만이다.

◇'팽 당했다’ 혹평했지만“이재명은 뭐 하나” 압박

민주당은 수석대변인 명의로 “바지 대표가 팽 당했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김 대표 사퇴가 ‘인적 쇄신’으로 비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야권에선 이재명 대표가 받을 압박이 더 커졌다는 말이 나왔다. 집권여당 대표가 선거 승리를 위해 사퇴한 만큼, 야당 대표도 혁신 경쟁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당 핵심관계자는 “김 대표는 어차피 그만둘 사람이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분명히 ‘그럼 이재명 대표도 결단하라’고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당의 도덕성 회복’차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명분을 얻게 됐다. 민주당 내에선 비명(非)이재명)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 원외에선 이낙연 전 대표 등 정치 원로가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한다. 이 대표는 현재 위증교사를 비롯해 제3자 뇌물, 배임 혐의 등 피고인 신분으로 주 최대 3회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기소’라는 당론과 별개로, 총선을 앞둔 당이 도덕적 타격을 입는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김기현 대표 사퇴는 이미 강서 보궐선거 때부터 예견된 건”이라면서도 “그렇게 버티던 김기현도 직을 내려놓는데 ‘민주당은 뭐하냐, 그래서 이재명은 어떻게 할 건가’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장제원 의원과 김 대표의 행보가 ‘기득권 내려놓기’의 상징이 되면, 이 대표도 어떤 식으로든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가 사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강성 친명은 ‘비명 지역구 사냥’비주류만 줄줄이 불출마

야당 의원들의 불출마도 이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초선인 이탄희·홍성국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양당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약속 파기, 후진적 정치구조, 계파 기득권 속에서 소신을 펼치기 어렵다는 이유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영입한 인재이자, 당에선 비주류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판사 출신 소장파, 홍 의원은 미래에셋증권 사장 출신의 금융·거시경제 전문가다.

현재까지 민주당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은 6명이다. 중진에선 박병석·우상호 의원, 초선 중에는 이들 두 의원과 오영환·강민정 의원이 있다. 그러나 이 대표와 가까운 ‘친명 주류’로 꼽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당대표·장관 등을 지낸 원로들이 ‘친명’을 자처하며 출마를 준비 중이다.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후 국민의힘 인적 쇄신 움직임에 대해 “여당 상황인데 우리당이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