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제1당(168석)인 더불어민주당이 22대 총선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또는 '위성정당을 전제로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검토하고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과는 부딪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게 우선이라는 논리다. 당 일각에선 '자기 부정'이라며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결국 여당과 합의해 병립형 또는 위성정당을 택할 거란 게 중론이다.
민주당은 30일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제 개편을 집중 논의한다. 당초 전날인 29일 오후 의총에서 다루기로 했지만, 최대한 많은 의원들이 참석하도록 본회의가 열리는 다음날로 일정을 늦췄고 한다. 원내 관계자는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고 각자 목소리를 내는 중이어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내일 마침 본회의도 있어서 참석자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 선거법상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은 '준연동형 비례제'로 선출한다. 양당의 독식을 막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늘리자는 명분으로 민주당이 주도해 2020년 21대 총선 때 처음 도입됐다. 다만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하고, 나머지 17석은 병립형을 적용했다. 병립형은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의석 수와 상관 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나눠 갖는다. 과거 20대 총선 때까지 계속 적용해왔던 제도다.
반면 준연동형 비례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의 의석 수를 미리 나눠 정한 뒤 ▲전체 지역구 당선자 수가 여기에 못 미칠 때 모자란 의석 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거대 정당 입장에선 지역구 당선자가 많이 나올수록 상대적으로 비례 의석에선 손해를 보는 셈이다.
결국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기존 약속을 파기하고 일제히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무려 35개의 비례 정당이 난립했고, 이들을 전부 담느라 투표용지 길이만 48cm가 넘었다. 역대 선거 중 가장 길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모두 총선이 끝난 지 약 한 달 만에 모(母)정당과 흡수합당했다. 두 거대 정당의 의석 수만 더 많아졌다.
민주당은 아직 선거제에 대한 공식 입장이 없다.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이 법안 처리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당내 의견이 다양해 정리를 못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입장이다. 위성정당을 없애려면 과거 방식이 낫다고 설명했지만, 비례대표에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더 크다. 여야가 선거법 개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지난 총선과 같은 '꼼수 비례정당'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이 대표도 '명분'보다 '의석 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만약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의 폭주와 과거로의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고도 했다. '위성정당 금지'라는 명분을 따르느라 국민의힘에 '원내 1당'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동일한 득표를 했더라도 어떤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택하고, 위성정당을 만드는지에 따라 의석수가 달라진다. 연동형을 택하면, 민주당은 120석을 얻지만 국민의힘은 146석을 얻는다. '이준석 신당'은 11석, 정의당 8석, 조국 신당 4석, 무소속은 9석으로 집계됐다. 최 소장은 "민주당이 손해 보는 만큼을 나머지 정당이 나눠먹는 구조"라며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만들지 않으면 26석의 의석 차이가 발생한다고 봤다.
비명(非이재명)계 다수는 이 대표가 과거 제도로 돌아가거나 위성 정당을 만들려는 것이 결국 비례대표에 '측근'을 심으려는 의도라고 본다. 홍영표 의원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라는 극단의 생각은 민주당의 길이 아니다"라며 "선거 이기려고 정치하는 게 아니라 옳은 정치를 해야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민 의원도 "국민께 했던 약속을 깨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겠다는 이재명식 정치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위성정당 금지'는 불가능하다. 정당보조금 삭감은 해도 창당이나 합당을 어떻게 막느냐"며 "명분 챙기다 과반 빼앗기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 선거는 원래 이기는 게 선(善)"이라고 했다. 진성준 의원도 CBS 라디오에서 "대표가 대선 때 한 말은 우리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이라며 "현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병립형 회귀를 생각하는 민주당 의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