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초대형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총선 표심의 대가로 최대 수십조원이 드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경제성 조사를 건너뛰게 해준다는 것이다. 국가 채무가 지난해 대비 66조 넘게 늘어난 가운데, 여야 모두 지역 예산안 증액을 추진 중이어서 재정 악화는 더 심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28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발의 또는 통과된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최소 92조원이다. 소관 부처 추산치 또는 법안에 명시된 수치라는 점에서 실제 사업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국가재정법상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예타를 받아야 한다. 비용 대비 편익을 평가해 사업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다만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은 예타 면제가 가능해 선거철마다 성급하게 오·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오는 30일 전체회의에서 지하철 5호선을 경기 김포까지 연장하는 사업의 예타 면제를 골자로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심사한다. 이 법은 민주당이 지난 23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 회의에서 단독 의결한 법안이다. 최소 3조원이 든다. 국민의힘이 '메가시티 서울' 공약을 내놓자 민주당이 대응책으로 발표했다. 같은 날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은 '비수도권 광역교통시설 확충 사업' 예타 면제 법안으로 '맞불'을 놨다. 창원, 김해, 천안, 청주, 전주 등 인구 50만이 넘는 비수도권 지역이 전부 해당된다.

이달 14일에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정부가 지상 철도 부지를 우선 사업시행자에게 현물 출자하고, 사업시행자는 채권을 발행해 지하 철도 건설비를 투입한 뒤 개발이 된 상부 토지를 매각해 투입비를 회수하는 내용이다. 국가가 재정을 직접 투입해 예타를 우회하도록 했다.

권 의원이 낸 법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경인·경부·경원선 지하화 사업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도 이튿날 '지하철 1호선 등 도심 지상철도 지하화를 위한 특별법'을 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경부선·경인선·경의선·경원선·경춘선·중앙선 국철노선의 지상 구간과 도시철도 4개 노선의 지상 구간을 지하로 옮기는 작업에 대략 45조2000억원이 들 것으로 봤다.

경기 수원에서 5선을 지낸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 13일 '수원 군 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수원시 소재 군 공항을 화성으로 옮기고, 민간공항 등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내용이다. 군 공항 이전은 이 지역 숙원 사업로, 선거 때마다 여야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수원시 추산 20조원이 필요하다.

이들 법안이 오는 30일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다뤄질 지는 미지수다. 우선 발의된 국토위 소관 법안이 워낙 많고, 같은 날 국회 본회의도 예정돼있어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다. 12월 1일, 8일 본회의에서 다루지 못할 경우, 이번 국회 회기(~12월 9일) 내 임시국회를 열어 심사해야 한다.

국회의사당. /뉴스1

내달 5일 국토위 소위원회에서 다룰 '달빛고속철도 특별법'도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하고 여야 당대표·원내대표 등 국회의원 261명이 동참했다. 국토균형발전, 지역갈등해소 명분으로 11조3000억원짜리 대구~광주 고속철도 건설사업의 예타를 없애는 내용이다. 2006년부터 경제성 평가마다 낙제점을 받았다. 전임 정부 때인 2021년엔 국토부 사전타당성 조사의 B/C(비용 대비 편익)수치가 0.483으로, 기준 값(1.0)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경제성만 따지면 안 된다"며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한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특별법은 추진 단계에 들어섰다. 2025년 착공, 2030년 민간·군 복합공항 형태의 개항이 목표다. 대구시 추산 군 공항 건설에만 최소 11조4000억원, 민간 공항엔 1조4000억원이 소요된다.

정치권의 '예타 폭주'는 국가 재정 악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99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66조1000억원 증가했다. 나라살림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0조원을 넘었다. 정부의 연간 전망치(58조원)를 웃도는 수치다.

학계에선 '가덕도 신공항'을 대표적인 포퓰리즘으로 꼽는다. 입지 평가는 물론, 총리실 차원의 검증 당시에도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여야가 앞다퉈 특별법을 냈다. 결국 2021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활주로 1개와 터미널 공사에만 업계 추정 13조원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당시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이 법을 밀어붙였다.

국회에서도 예타 대상사업의 기준을 전면 조정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그간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를 여는 등 개선 노력은 있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이런 시도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기준 조정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할 예타 면제가 주(主)가 되고, 예타 실시는 부(副)가 됐다"며 "예타 기준 조정을 위한 입법 논의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을 따져서는 예타 면제가 안 될 것 같으니 법안을 내는 것"이라며 "결국은 정치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총선 때문에 예타 면제 법안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며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 대표적이다. 후세에게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