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뭉쳐야 이긴다'는 공감대가 범여권에 형성돼 있지만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의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혁신안 1호'였던 징계 취소 취지도 빛바랜 지 오래다. '미스터 린튼' 발언에 이어 '부모 잘못' 논란까지 두 사람의 갈등이 봉합하기 어려워진 만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오월동주' 전략도 현실화하기 더 어려워졌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앞줄 왼쪽)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인 혁신위원장은 이 전 대표와 만나기 위해 '깜짝' 부산 방문을 했지만, 두 사람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뉴스1

인 위원장은 27일 '준석이 도덕' 발언에 대해 "이 전 대표와 부모님께 과한 표현을 했다"며 공식 사과했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자 하루 만에 입장문을 낸 것이다. 인 위원장은 전날 국민의힘 서산·태안 당원협의회 강연에서 "한국의 온돌방 문화는 아랫목 교육을 통해 지식, 지혜, 도덕을 배우는데,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며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 큰 것 같다"고 했었다.

이 전 대표는 곧바로 페이스북에 "정치를 하는데, 부모 욕을 박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패드립(패륜적 말싸움)이 혁신인가"라고 했다. 인 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당내 통합을 위해 이 전 대표에게 손을 내민 과정을 설명하다가 나왔다. '이준석을 끌어안는' 통합을 거론하며 나온 발언이지만, 여권에선 인 위원장이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의 동양적 예의에 관한 문제는 당연히 짚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부모님까지 꺼낸 건 적절치 않았다"고 했다. 같은 당 이용호 의원도 BBS라디오에 출연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개인을 비판하기 위해서 부모를 끌어들이는 건 선을 넘은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설전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일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을 "미스터 린튼(Mr.Linton)"이라고 부르면서 영어로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전남 순천 태생인 인 위원장의 '인종적 차이'를 염두에 둔 말이어서 '헤이트 스피치(혐오 표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인 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징계 취소를 제안하고 부산까지 그를 만나러 갔지만, 이 전 대표의 만남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당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혁신안 1호로 '이준석 끌어안기'를 시도했으나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같은 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 두 사람은 같은 선착장에 서 본 적조차 없다"며 "두 사람의 감정적 골이 부산 방문 때부터 시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이준석 전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인 혁신위원장은 이 전 대표와 만나기 위해 '깜짝' 부산 방문을 했지만, 두 사람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뉴스1

인 위원장이 사과했지만, 감정의 골을 좁히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월동주' 전략도 힘을 받기 어렵게 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갖고 있던 악감정들이 이번 '부모 욕 논란'으로 드러난 것이다. 여러 기폭제 중 하나가 터진 것"이라며 "어차피 이 전 대표가 당으로 돌아올 공간은 이미 인 위원장이 막아 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만에 하나로 돌아온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화학적 결합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범여권 표심은 갈라질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번 인 위원장의 발언은 이 전 대표에겐 당과 함께 갈 수 없으니 이젠 탈당하겠다 혹은 신당을 창당하겠다 등 하나의 명분을 준 것"이라며 "두 사람의 말다툼은 벌써 두번째다. 이런 식으로 내부 갈등이 계속 쌓이면 범여권은 쪼개질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