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원자력발전소 기술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을 1900억원 가까이 삭감했다. 정부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예산을 올해 대비 9배 늘리는 등 적극 지원키로 하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안전성과 환경을 문제 삼았다. 정부의 R&D예산 삭감에 집단 반발했던 민주당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따라 원전 관련 사업에는 칼을 댄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예산안 관련 일정에 항의하며 퇴장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원 불참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주당은 내년부터 착수 예정이던 혁신형 소형 모듈원자로(i-SMR) 기술 R&D 사업비 332억8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첫해인 지난해에도 i-SMR 예산을 삭감했었다.

그 외 원자력 업계 금융 지원 등 원전 생태계를 지원하는 데 쓰려던 1112억800만원, 원전 해외 수출 보증비 250억원, 원전 첨단제조기술 및 부품장비개발 60억원,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비로 책정했던 57억8500만원,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비용인 1억원 등이 일제히 잘렸다.

산자중기위 민주당 관계자는 “상임위 예비심사는 거쳤지만 예결특위 본심사는 야당 단독으로 하는 게 아니어서 이대로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원전 예산은 대폭 손 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i-SMR은 완전히 깎았다”고 했다.

◇“i-SMR, 경제성·안전성 효과 전부 의심” 과방위서도 삭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원자력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과방위의 과기부 예산안 심사자료에 따르면,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i-SMR이 경제성·안전성·친환경성 모든 측면에서 효과가 의심된다며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면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는 올해 31억원 수준이던 i-SMR 관련 R&D 예산을 273억7000만원으로 늘렸다.

같은 당 박찬대·조승래 의원은 i-SMR 사업 예산을 12억원 감액해 26억원만 편성하자고 했다. 이 사업의 7개 과제 중 일부 과제는 연구개발 담당 기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연구로 판형핵연료(판형으로 된 고밀도 저농축 핵연료) 수출 핵심기술 R&D 예산 37억원도 전액 삭감했다.

조 의원은 “과방위에서 삭감한 원안위 예산은 기술개발 R&D가 아니라 SMR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용역 부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업 자체의 불확실성이 크고, 전년 대비 증액 폭이 173%를 넘어 과하다는 전문위원 검토 보고도 있었다”며 “i-SMR 기술개발 R&D도 주관 기관이 안 정해진 과제만 전체예산 대비 5% 미만으로 삭감 의견을 냈다”고 했다.

한편 과방위는 앞서 예산심사소위에서 이러한 내용의 예산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정부가 삭감한 R&D 예산은 2조원가량 늘렸다. 다만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방위원장이 이를 문제 삼아 전체회의를 열지 않고 있다. 과방위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의결한 예산안이라 장제원 위원장이 회의를 개최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회의가 안 열려서 상임위 차원의 예산안 심사 결론을 못 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