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횡재세’ 입법 공방전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야당의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은행 때리기’ 기조에 발맞추되 시장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당정이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횡재세 도입에 대한 ‘국민 70% 찬성’을 근거로 정부의 횡재세 도입 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야권은 금융권 초과 이익 환수를 정조준한 ‘횡재세’ 법안 발의 공세로 당정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與 “시장경제에 맞는 대안 찾을 것” vs 野 “국민 70% 찬성… 尹정부도 협력해라”
17일 여야는 ‘횡재세’ 도입을 놓고 상반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이 과점 지위를 누리면서 세계적 고금리 추세 속에 높은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이용해 손쉽게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면서도 “민주당의 횡재세법 발의는 사실상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협력해 시장경제 원리와 맞는 방향으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원내대표는 “(횡재세 관련) 당·정협의회를 통해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법안을 발의할 것인지 아니면 법안 발의 없이 정부 정책 차원에서 가능한 것인지 등을 당정협의회를 통해서 결정하겠다. 그 결정에 따라 후속 조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은행 때리기’ 기조는 그대로 갖고 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스스로 은행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쉰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도 “은행의 독과점 행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은행 산업 과점의 폐해가 큰 만큼,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당국에 지시한 바 있다.
반면 야권은 ‘횡재세’ 부과 법안 발의 공세에 이어 국민의 70%가 횡재세 도입을 찬성한다는 이유로 윤석열 정부가 횡재세 도입에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횡재세 부과와 관련된 내용의 법안은 총 9개 법안이 올라와 있다. 일례로 ▲민병덕·양경숙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서민의 금융생활지원법 개정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의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법 개정안 등이 있다.
가장 최근에 발의한 법안은 지난 13일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법이다. 이재명 대표가 횡재세 도입을 당론으로 추진한 지 단 4일 만에 발의한 법이다. 해당 법안의 핵심 내용은 금융회사가 고금리로 벌어들인 초과 이익 일부를 분담금의 형태로 환수하는 것에 있다. 이 법을 따르면 은행권은 1조9000억원 가량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국민 70% 이상이 (횡재세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도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은행권의 고금리 이익을 질타했다. 이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횡재세 도입을 하도록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금융업계, 횡재세 취지 공감하지만… 부작용·총선용 공약 등 우려
금융업계와 전문가들은 여야 정쟁에 휘말린 ‘횡재세 도입’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고민 없이 총선용 공약으로 ‘반짝’ 부상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에서 독점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예대금리차를 늘렸고, 여기서 수익이 난 것도 맞는 부분”이라며 “여기에 세금을 거두는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회적 이익을 나눈다는 점에서 보면 부담금을 매기는 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법 취지에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이유”라고 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횡재세 도입’ 취지인 고통 분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금융산업과 시장, 금융소비자에 미칠 막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횡재세는 너무나 성급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매년 1조원이 넘는 사회공헌기금, 은행연합회가 약속한 3년간 10조원의 사회공헌 약속 전부를 기여금으로 전환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며 ▲사회공헌 기관들의 출연 중단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의 고통 가중 ▲외국인 주주 비중이 60~70%에 이르는 금융지주회사들의 주주 이탈 ▲금융경쟁력·국제 신용등급 하락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에는 서민 고통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야당에는 횡재세법 발의안을 철회하고 거시적 정책 대안을 논의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횡재세는 소득세·법인세·기업 환류 세제까지 낸 다음에 또 과세한 것”이라며 “내년 총선 때문에 ‘표몰이’로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걸로 보이는데, 세수 예측을 정부가 잘못해 놓고 금융권에서 수익이 났다는 이유로 사회에 환원하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이익이 늘어나면 이들에게도 횡재세를 걷을 건가”라며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은 건 與野 ‘횡재세’ 법안 심사·합의… 전문가들 “尹정부 성과로 합의할지도”
전문가들은 은행 경쟁력을 약화하고 내년 총선 전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횡재세 도입’ 법안 심사에서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오히려 야당발(發) 횡재세 도입 추진으로 정부·여당이 서민층 재원을 확보하고 세수 결손을 메우는 등 내년 총선에 앞서 표심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금리로 인한 ‘이자 폭탄’으로 고충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은 반색하는 상황에서 집권당과 정부가 ‘횡재세법’ 도입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에서 낸 법안을 놓고 이제 여야가 심사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갈 텐데, 이 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하는 법적 취지를 살리면서 민주당의 성과보다는 윤석열 정부·집권당의 성과가 되도록 절충점을 논의할 것”이라며 “김성주 의원 발의안을 일부 변형하거나 여당 버전 법안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이자 수입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라는 고강도 주문을 한 상태”라며 “다만 이걸 국정 성과로 갖고 가면 내년 총선 표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야당발(發)로 시작한 횡재세 도입을 정부 차원으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횡재세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를 놓고 정치적 셈법이 매우 복잡하게 오갈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적 찬성이 높은 정책을 민주당이 한다는 이유로 막을 때 오는 후폭풍은 표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 심사 과정에서도 대놓고 반대하기보다는 법안이 통과되는 방향으로 여야가 합의한 뒤 진짜 법이 시행될 때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으로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할 부분을 확실히 공략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