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와 혁신위원회가 17일 갈등 봉합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이날 비공개 긴급 회동을 가졌다. 김 대표가 "앞으로도 가감 없는 의견을 전달해달라"고 하거나 인 위원장이 "당과 불필요한 오해가 많았다"고 하는 등 갈등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날 회동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된 '지도부·중진·친윤(親尹) 불출마 및 험지 출마'와 '윤심(尹心)'이 언급되지 않아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와 인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약 42분 동안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만난 것은 인 위원장이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날 이후 25일 만이다. 인 위원장은 김 대표와의 면담 전 "당과 불필요한 오해가 많았다. 소통하면서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동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이번 혁신위는 과거와는 달리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 주고 활동하는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며 "앞으로도 혁신위가 가감 없는 의견과 아이디어를 계속 전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 위원장은 당과 우리 정치의 한 단계 발전을 위해 당에 고통스러운 쓴소리라도 혁신적으로 계속 건의를 드리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과 혁신위는 이날 면담으로 최근 불거진 갈등을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국민의힘 지도부는 혁신위 출범 당시 '전권을 주겠다'며 힘을 실어줬지만 최근 인요한 혁신위가 공개적으로 '쇄신 압박'에 나서자 갈등이 촉발됐다.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대사면'을 내놨을 때만 해도 당 최고위원회는 이를 적극 수용하며 혁신위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인 위원장이 당에 '지도부·중진·친윤(親尹) 불출마 및 험지 출마'를 공개적으로 권고하며 기류가 바뀌었다. 인 위원장은 권고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쇄신 압박'에 나섰고, 김 대표는 침묵을 이어갔다. 당내 친윤·영남 중진 의원들은 오히려 지역구 사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최근에는 혁신위 '조기 해체론'까지 제기됐다.
또 최근 인 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으로부터 '지금 하는 것을 소신껏 끝까지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김 대표가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전날(16일) 인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 대표와 인 위원장이 만나며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이날 회동에서는 중진 불출마·험지 출마나 대통령실과 관련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또 당 지도부는 '절차'를 강조하고 혁신위에서는 '신속한 혁신안 수용'에 대해 언급하며 입장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는) 혁신위에서 계속 주는 의견들의 취지에 대해서 존중하고 있고 전적으로 공감하며 적극 고려해 나갈 생각"이라면서 "다만 절차와 논의기구를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혁신위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인 위원장이 조금 불만족스러운 생각을 가진 일부 혁신위원들의 말도 전달드렸다"며 "혁신위에서 의결한 안건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당에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이런 취지의 뉘앙스의 말을 전달했다"고 했다.
김 대표와의 회동 이후 연이어 이뤄진 간담회에서는 혁신위에 힘을 싣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혁신위원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대통령, 권력자 주변에서 그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한 사람들이 몸을 던져야 한다. 당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인 위원장이 친윤 의원들을 겨냥해 '희생'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혁신위는 또 이날 회의에서 '4호 혁신안'으로 내년 총선 모든 지역구에서 전략공천을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내놓으며 다시 한번 쇄신을 강조했다. 이소희 혁신위원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혁신안에 대해 설명하며 "상향식 공천을 통한 공정한 경쟁"이라며 "대통령실 인사도 예외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둘째는 엄격한 컷오프"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 당의 명예를 실추한 자, 금고 이상 전과자는 전부 공천 배제"라고 말했다. 다만 4호 혁신안 중 '엄격한 컷오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결정 사항을 모두 공천관리위원회에 돌렸다.
전문가는 당과 혁신위 사이의 갈등이 커지면 내년 총선에 오히려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당과 혁신위 사이의 논쟁이 당내 갈등으로 비치고 혁신위가 성과 없이 끝난다면 총선 결과가 좋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