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7일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읽은 판결문 일부다. 구속 수사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법정에서 타인에게 거짓 증언을 하도록 꾄 혐의는 충분히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예고였다. 그런데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영장 기각으로 ‘사법 리스크’를 벗어났다고 주장했었다. 그랬던 ‘위증교사’ 혐의는 한 달 만에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을 가를 최대 변수가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 관련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3일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4차 공판에서 이 대표 측이 요구한 ‘위증교사 혐의 사건’ 병합 여부에 대해 “다른 피고인도 별도로 있고, 검찰과 변호인 측이 따로 의견을 제출했기 때문에 공판준비기일을 따로 열어서 그날 최종적으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제시한 별도 기일은 이달 13일이다.

현재 이 대표가 피고인으로 기소된 사건은 총 6건으로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제3자 뇌물 등) ▲대장동·위례(배임) ▲성남FC(제3자뇌물) ▲백현동(배임) ▲검사사칭 위증 종용(위증교사) ▲20대 대선 허위사실 공표(공직선거법 위반)가 있다. 이중 대장동·위례, 성남FC, 백현동은 서울중앙지법에서 병합 심리 중이다. 위증교사도 대장동 사건과 병합을 검토 중이다.

이날 재판은 앞서 법원이 지난달 30일 대장동·위례·성남FC 사건과 백현동 사건을 합쳐 동시에 심리하겠다고 밝힌 이후 첫 재판이었다. 대장동 의혹은 올해 3월22일, 백현동은 지난달 12일 각각 기소됐다. 다만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개발업자와 브로커에게 개발이익을 몰아주는 등 범행 혐의 구조가 유사하고, 피고인도 같아 재판을 병합해 선고를 한 번에 내리기로 한 것이다. 이 대표와 검찰도 병합을 요청했다고 한다.

반면 위증교사 사건을 나머지 재판과 합치는 것에 대해선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이 대표 측은 방어권 보장에 유리하도록 재판을 병합해 달라고 거듭 주장했다. 같은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이고, 형법상 병합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도 들었다. 검찰은 위증교사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 구조가 다르다며 별도 재판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불법 후원 의혹 관련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비교적 간단한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에 묶으면 재판 하세월”

위증교사 사건의 시작은 21년 전이다. 2002년 ‘검사 사칭’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누명을 썼다”는 취지의 허위 주장을 한 혐의를 받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런데 이 대표가 선거법 위반 재판 과정에서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였던 김모 씨에게 거짓 증언을 요청했고, 위증 덕에 결국 무죄를 받아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김 씨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만,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위증을 요구하고 ▲원하는 진술 요지서까지 구체적으로 보내준 내용 등이 담긴 녹취록도 제출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저지른 다른 사건들과는 공통분모가 없다”며 “위증교사는 경기지사 시절 발생한 사건이고, 대장동‧위례‧백현동 사건과 관련성도 적다”고 했다.

검찰은 위증교사 사건 병합이 이 대표 측의 ‘재판지연 전략’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본다. 법조계에선 위증교사 혐의만 별도 심리할 경우 내년 4월 총선 전에 1심이 선고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사건 구조가 단순하고, 검찰이 이미 관련 녹취록도 제출했다. 유창훈 부장판사가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이유다.

반면 대장동·백현동 사건 등은 위증교사 사건에 비해 내용이 복잡하다. 이들을 묶어서 재판하면 법원 선고 결과가 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각 사건마다 증인이 제각각이고, 출석 일정도 모두 달라 재판이 길어진다. 1심 판결을 최대한 미루고, 총선 전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이 대표에겐 최선의 재판 전략인 셈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재판 병합을 요청한 건 이 대표가 그만큼 ‘위증교사’를 엄청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사법부가 굳이 총선이라는 민감한 일정 전에 1심 판결을 내는 건 지양할 것 같다”면서도 “정치인 맘대로 못하는 게 민심과 법원 판결이다. 위증교사에 대한 판결은 총선 전에도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 대표로서는 무조건 재판을 지연 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