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당일인 29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초청했다.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우리 동포를 잘 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동포들은 “윤 대통령 덕분에 78년의 한과 고통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 원폭 피해동포 85명을 초청해 오찬을 했다. 재일동포 42명, 국내 거주자 43명 등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건희 여사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 동포들을 만나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초청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오찬이 진행되는 동안 김화자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 부인회 히로시마현 본부 부회장은 “4살 때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다”며 “피폭 1세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는데 이런 자리가 영광스럽다”며 울먹였다.
유영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사무국장은 78년 동안 소외돼 있던 원폭 피해자들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동포들은 오찬을 하며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의 가야금 3중주, 부채춤 그리고 아리랑 등 경기민요로 구성된 추석 풍류 공연과 바리톤 김동규의 그리운 금강산 등의 문화공연을 감상했다.
오찬 메뉴는 삼색전, 전통잡채, 전복찜, 떡갈비 구이, 소고기국, 약과, 송편, 식혜 등 한상차림으로 동포들이 고국의 추석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윤 대통령이 떠나기 전 동포들에게 “한국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모국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고향의 가을 정취도 즐기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이날 초청된 동포들은 다음 달 3일까지 5박6일 동안 한국에 머물며 경복궁과 국립현충원, 롯데타워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재외동포청장 주재 만찬과 특별 건강검진도 계획돼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 최대 명절인 추석을 여러분과 함께 맞이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며 “정부가 여러분을 이렇게 모시기까지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수만 명의 한국인들이 원폭 피해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식민지 시절, 타향살이를 하면서 입은 피해였기에 그 슬픔과 고통이 더욱 컸을 것이다”고 위로했다.
이어 “오래도록 불편했던 한일 관계가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동포 여러분의 아픔을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방한이 여러분이 겪은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함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것은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정부는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협력하면서 역내,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동포들의 아픔과 희생에 대한 위로는 이 자리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우리 동포를 잘 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답사에 나선 권준호 한국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것을 언급했다.
“안 되는 우리말로 인사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발언을 시작한 권 위원장은 “지난 5월 윤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 위령비 참배가 늦어 송구하다’고 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78년의 한과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저희와 저희 자손들도 이제 과거와 다른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원폭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꿈은 “핵무기가 없는 세계”라며 “제게 핵무기는 악몽”이라고 했다.
그는 “악몽 같은 핵무기가 한반도에 다시 등장한 데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히로시마로 돌아가서도 우리 정부의 평화, 비핵화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성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