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았을 때 적용하는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에 따른 부담금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 법안들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이다. 이들 법안은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규제를 윤석열 정부가 푸는 형태로 추진되는 중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서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고 해석한다. 민주당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원들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라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국회 통과가 늦어질수록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매제한 기간은 완화…실거주 의무 폐지는 野 반대로 계류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부동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주택을 매입할 경우 부과하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전매제한 기간도 줄이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달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매제한 규제는 먼저 완화했다. 이에 따라 최대 10년이던 전매제한 기간은 3년으로 줄었다.
그러나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4개월째 국회 계류 중이다. 사정이 생긴 경우 분양 받은 주택을 일찍 팔 수는 있게 됐지만, 실거주 의무가 없어지지 않아 결국 무용지물인 셈이다.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실거주 의무는 문재인 정부 시절 청약 시장이 과열되면서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만든 조항이다. 기존 주택 가격이 급상승하는 가운데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받는 주택은 분양가가 저렴해 청약 경쟁률이 치솟았다. 이에 실수요자만 청약하도록 수분양자의 실거주 의무를 신설한 것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지난 3월부터 지난 22일까지 네 번이나 국토위 국토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다. 그러나 여야 간 의견차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합의가 안 되고 있다.
여야는 지난 4월 30일 주택법 개정안을 상정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15일에는 야당의 반대로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22일 열린 소위에서는 노후 신도시 정비를 위한 특별법, 재초환 등 다른 안건 처리에 바쁘다 보니 후순위로 밀려 논의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폐지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보고 있다. 한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야당 의원 일부가 반대해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까봐 현실을 무시하고 반대 주장만 펼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주택 정책에 대해 자꾸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여당의 입장은 분양가 상한제로 혜택을 입은 사람은 경제적인 이익을 본 만큼 과세 등 경제적인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거주 의무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 의원은 지난 22일 국토위 국토법안심사소위 회의를 마친 직후 추가 통화에서 "오늘(22일)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반대가 심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사회적으로 (실거주 의무 폐지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 그때 민주당이 움직이겠지만 그전까지는 반대가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토위 야당 간사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는 당의 전체 입장으로 반대한다기보다는 편하게 의원들 판단에 맡겨 놓고 있다. 당 전체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의원들마다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니 향후 국토위 법안소위 논의를 지켜봐달라"고 했다.
◇여야, 재초환 완화에는 공감대 생겨…액수·기준 논의
재초환을 완화한 개편안 역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은 부담금 면제금액을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고, 부과 개시 시점을 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일에서 조합설립 인가일로 조정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이렇게 하면 재건축 부담금이 상당액 줄어든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3건 발의돼 있다. 3건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들은 정부 발표 이후 약 7개월 만인 지난 4월 말 국회에서 첫 심의가 진행됐지만, 여야 간 의견 대립이 뚜렷해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있다. 당시 민주당은 개정안 전반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당시 재초환 시행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지난 대선 기간에도 재건축 규제 완화와 관련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재건축 부담금 완화는 '부자들을 위한 법'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야는 국토법안심사소위 논의를 몇차례 거치면서 재초환 완화 필요성에는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모양새다. 최인호 의원은 "민주당도 재초환을 고쳐야 한다는 데 공감을 하는데 기준점, 액수 등에 대해서는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토위 소속인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국토위 국토법안심사소위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재초환법과 관련해 몇 가지 조항은 이견이 없지만, 이견이 있는 나머지 조항을 다음에 다시 이어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토위 소속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재초환법은 필요하지만 현실을 고려해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저는 후퇴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며 "다만 법이 너무 오래됐으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회 논의가 지연될수록 부동산 시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국회 논의가 길어질수록 부동산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면서 대국민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분양을 받은 사람들의 의사 결정을 애매하게 만들면서 시장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정부 발표가 있었던 만큼 국회의 빠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분양가 상한제 실거주의무 폐지, 재초환 완화 같은 경우 국회 논의가 길어지면 주택 공급에 영향을 준다"며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상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