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노동계의 관계가 냉랭한 가운데 여당이 발의한 ‘동일노동·동일임금’ 법제화가 주목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법제화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해왔는데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법안이다. 야당에서도 일단 “긍정적인 신호”라는 반응이 감지된다. 다만 정규직 근로자들의 반발이 있는 등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실제 법제화 과정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이미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UN광장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개청 기념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형동 의원은 지난달 31일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의 보장’을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은 근로자의 정규직·비정규직 여부, 원·하청 등 근로자의 소속, 계약 상태 또는 근속 기간과는 관계없이 동일한 일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균등 처우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를 보완해 기존 차별 금지 기준에 ‘고용형태’를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차별금지 기준으로 성별과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명시하고 있다. 개정안은 제6조 2항을 신설해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로계약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제6조의2를 새로 만들어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보장’에 대해 상세히 정했다.

김 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 개혁’ 핵심 과제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직접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말해온 바 있다. 우선 국민의힘이 추진 중인 이번 법안 제안 설명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가치의 존중은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노동 가치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 노동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1일 전·현직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 크게 차이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런 것들을 바로 잡는 게 노동 개혁”이라고 했다.

일단 진보 진영과 노동계에서 주로 요구해 온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현 여당에서 제시한 것은 상당히 전향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법제화 과정에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정규직 근로자들의 반발이 있는 데다 ‘동일가치노동’으로 판단하는 기준, 해당 원칙을 산업별로 어떻게 적용할지 등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통화에서 “정규직 근로자의 반발이 매우 클 거다. 지금까지는 사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비정규직에게 염가로 전가를 시켰다”며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금 결정 요소가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 생길 수 있다”며 “동일노동으로 판단할 기준을 어떻게 정할 건지, 단순히 기술과 숙련, 자격만 가지고 정할 건지 아니면 요소를 추가할 건지 굉장히 복잡해질 거다. 그런데 직무 중심의 임금 체계로 가게 되면 간단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힘이 내놓은 동일노동·동일임금 법안에 대해 반발했다. 민노총은 “문구만 놓고 보면 크게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노동개악’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에 숨은 악마적 디테일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고, 아마도 이는 현실로 등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총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인 비정규직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조직노동과 미조직 노동의 대립을 의도적으로 조장해 온 정부와 여당의 의도가 이번 개정안에 녹아있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차별의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형식적인 청취의 대상이고 실제 결정권은 사용자에게 부여한 전형적인 사용자 편향, 사용자 위주의 방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했다.

이어 “여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체계 개악 즉, ‘직무. 성과급제 도입 및 확대’ 등과 연동되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올려 전체적인 임금 수준 상승과 이를 통한 차별철폐와 격차 해소가 아니라 상위의 임금을 깎아 전체 임금을 ‘하향 평준화’ 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또한 소수의 최상위 임금 노동자와 전체 노동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100)을 기준으로 비정규직은 70.6% 수준으로 전년도 동기 대비 2.3%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지점은 많지만 국회 차원에서는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민주당은 앞서 박광온·강병원 의원 등이 동일노동·동일임금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추진해 온 바가 있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형동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에 대해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실현하는 방법에 차이는 있겠지만 큰 취지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될 거라 본다”며 “일반적인 법률안처럼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입법 절차를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위에서도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정책들이 계속 제안되고 발굴되고 있다”며 “어느 때가 되면 또 현안으로 상정되고 얘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긍정적인 신호고 실효적으로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하지만 하향 평준화를 기준으로 한 동일임금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며 “(국민의힘이) 진정성 있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하려고 하는 건지 봐야 할 것 같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방식이나 임금을 깎는 방식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반대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어 “노동 현장이 대단히 복잡하고 산업별, 직종별로 복잡한 상황이 있다. 이런 걸 잘 반영해서 실효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 임금 체계가 ‘호봉제’에서 ‘직무급 체계’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 원장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호봉제)를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꾸는 임금체계 개선이 적용되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게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며 “같은 직무에서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설정하는 게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 명칭도 ‘동일직무·동일임금’이 되는 거다. 그런 면에서 임금체계 개선 개혁 방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노동연구원의 ‘2021년 임금체계 현황과 실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100인 이상 사업체의 55.5%가 호봉제 임금체계를 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호봉제 활용률은 100~299명 사업장은 54.3%, 300명 이상은 60.1%, 1000명 이상은 70.3%로 근무 인원이 많으면 더 높아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법제화의 본격적인 도입 등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