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가상자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이 포함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공직자 가상자산 재산등록·공개 법안 발의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야는 각각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5년 전 무산된 ‘공직자 보유 가상자산 의무신고’ 입법이 결국 ‘김남국 코인 논란’ 덕분에 이뤄지는 셈이다.
아울러 공직자 후보 시절부터 재산 신고 과정에서의 ‘누락 실수’를 하지 않도록 법적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이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재산 신고 누락 실수’에도 의원직을 유지하는 선례(先例)가 되풀이되는 한 법적 취지는 퇴색될 뿐이기 때문이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행정안전위원회에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으로 ▲유경준 의원 대표 발의(국민의힘) ▲김한규 의원 대표 발의(민주당) ▲권성동 의원 대표 발의(국민의힘) 등 총 세 건이 올라와 있다. 세 건 모두 현행법인 공직자윤리법 제4조 제2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 제2항은 공직자 및 공직 후보자의 등록 대상 재산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 그 대상에 가상자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세 건 모두 입법 제안 이유에 공직자가 재산을 은닉할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활용할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與野, 5년 만에 ‘가상자산 의무 공개’ 입법 박차
정치권에서 공직자 재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20대 국회인 2018년 1월 민주당 소속 정동영·노웅래·기동민 의원 등은 ‘현행법상 공직자 등록 대상 재산 범위에 암호화폐 내용이 없어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가상자산과 관련해 마련된 정책 및 법체계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2020년 5월 제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당시 공직자 등록 대상 재산에 ‘가상자산’을 포함해 개정하지 못한 게 오늘날 ‘김남국 코인 사태’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여야는 고위 공직자 가상자산 재산공개 법제화 논의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 원내 회동을 마친 후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와 제가 생각이 같기 때문에 행안위 양당 간사를 통해 이미 법안은 제출돼 있으니까 법안 심사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도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가상자산을 재산 등록과 신고 대상으로 하고, 이해충돌 내역에 포함시켜 법의 미비점과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미국과 유럽처럼 고위 공직자에 대한 등록 대상 재산에 가상자산도 포함된다. 미국은 지난 2018년부터 주식법에 따라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는 1000달러 이상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재산 등록 기간 동안 가상자산을 통해 2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얻으면 신고해야 한다. 또 가상자산을 매수한 날을 기준으로 45일 이내에 반드시 해당 내용을 공시하고, 보유한 가상자산의 액수부터 종류, 거래소 등을 공개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 중 직무와 연관되는 가상자산을 보유한 경우엔 해당 직무에서 공직자를 제외한다.
EU는 지난 2020년부터 자금세탁방지법(AML)에 따라 회원국 내 주요 공직자들의 재산 정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때 공개되는 재산 정보에는 가상자산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가상자산으로 거래가 가능한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도 공직자들이 공개해야 하는 재산 정보에 포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락 실수’ 양형기준 강화하고 법·제도적 환경 조성해야
일각에서는 공직자 후보 시절부터 재산 신고 과정에서의 ‘누락 실수’에 대한 법적 조치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상자산이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대상에 포함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적으로 은닉하기 쉬운 가상자산을 이른바 ‘재산 신고 누락 실수’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상 공직자 후보가 재산공개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경우 당선 무효 처리가 되면서 의원직이 박탈된다. 김남국 의원과 같은 때 당선된 제21대 국회의원 중 재산공개 신청 과정에서 ‘실수’로 재산 일부를 누락해 재판받은 경우는 김홍걸(민주당), 양정숙(무소속), 조수진(국민의힘) 의원이 있다. 현재 이들은 모두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김홍걸·양정숙·조수진 의원은 각각 부인 명의 상가 대지 및 상가·아파트 임대보증금(10억원), 남동생 명의 건물의 10분의 2 지분(5억 2800만원), 채권 및 퇴직금·배우자 예금(11억원) 등을 ‘실수’로 재산공개 신고에서 누락했다. 이후 김홍걸·조수진 의원은 1심 재판에서 벌금형 80만원을 받았다. 양 의원은 1심에서는 벌금형 300만원으로 당선 무효가 될 뻔했지만, 2심에서 남동생 명의 재산의 자금 출처가 양 의원이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세 의원의 판례에는 이들이 당선을 목적으로 일부러 재산을 축소한 것에 대한 ‘고의성 여부’가 관건이었던 것으로 적혀 있다.
전문가들도 공직자 및 공직자 후보가 가상자산까지 모두 공개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 후속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류정원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공직자들이 재산을 신고에서 누락한 경우 고의성이 없었다거나 실수였다고 주장하는데 법원에서의 판단은 어느 정도 고의성을 인정해 유죄인 경우가 많다”면서 “다만 의원직을 박탈할 정도인가에 대한 판단에서 봐주기성으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하지 않는 것인 만큼 양형 기준을 올리는 방법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가상자산은 제도권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게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먼저 제도권 안에 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공직선거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에 관련 내용을 넣는 것부터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면서 “가상자산과 관련된 기관과의 정보 공유 시스템을 만드는 등 전체 가상자산을 확인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공직자의 신고에만 의존하지 말고 가상자산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상자산 신고나 공개가 제대로 이뤄진 게 맞는지 제출된 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면서 “국회의원과 같은 고위 공직자에 한해 가상자산 이외의 디지털 시대 속 새로운 형태의 자산 보유액 등을 공개할 수 있는 시범적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가상자산 관련법도 많이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해충돌이 더욱 집중되는 곳이 입법기관인 국회”라며 “때문에 단순히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공개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신속히 마련해 공직자들이 업무상 이해 충돌되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