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러시아는 실제로 한국이 무기를 제공할 경우 반(反) 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일(현지 시각)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 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또 러시아 외무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양국 관계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정부는 앞서 전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기자들과 전화 회의에서 "무기 공급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고 경고했다. 또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전체 과정에서 다소 비우호적 입장을 취해왔다"고 덧붙였다.
반면 존 서플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질의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은 국제법, 규칙,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와 평화 및 안정 유지에 대한 약속을 포함하는 공동의 가치를 기반으로 철통같은 동맹을 맺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느라 재고가 부족해진 나토 회원국에 지원하는 방식의 '우회 지원'이 가능하다는 미국 전문가 주장도 나왔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19일(현지 시각) 전화브리핑에서 한국이 교전국인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는 게 기존 정책과 충돌한다면 NATO 회원국의 무기 재고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탄약 비축 물량을 보유하고 있고 탄약 생산능력도 엄청나다"며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필요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탄약"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으로 한국이 입을 경제적 피해와 관련해 차 석좌교수는 러시아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미국과 폴란드에 탄약과 무기를 판매한 한국을 "이미 교전국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미 러시아의 분노와 적대감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대리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그런 결정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했다. 이어 "필요한 군수품을 한국이 많이 비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과 다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큰 지지를 보낼 것"이라며 "'글로벌 중추 국가'를 향한 윤 대통령의 열망과 매우 일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렌스 로리그 해군전쟁대학 교수는 VOA에 윤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뿐 아니라 나토 국가들이 막후에서 한국에 대해 포탄을 제공할 것을 더욱 강력하게 설득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느라 물량 확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로리그 교수는 "한국의 무기 산업은 매우 효율적이고 널리 인정을 받고 있으며, 좋은 재료로 좋은 품질의 포탄을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한다"며 "한국이 재고 보충의 좋은 공급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19일) 보도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을 겨냥한 대규모 공격 등의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한국 정부 입장 변경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실은 러시아 크렘린궁이 윤 대통령 발언에 반발하자 "크렘린궁 대변인의 언급은 가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코멘트하지 않고자 한다"며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등의 사안이 발생한다면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지원할지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