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1년 앞두고 다수당의 수적 우위를 내세워 양곡관리법 통과를 밀어 붙인데 이어 간호법·의료법 개정안 등의 단독 처리도 시도하고 있다. 일각에서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이자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달 23일 오후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명, 기권 7명으로 양곡관리법에 대한 수정안을 가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당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법제사법특별위원회로 넘긴 법안이다.
이후 법사위에서 국민의힘의 반대로 60일 넘게 처리되지 않자 민주당은 지난 1월 이를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 여야 간 합의를 기다렸지만,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의석수를 앞세워 통과시켰다.
현행 의료법 등에 포함된 간호사 업무 관련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하는 내용의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의 경우 김진표 국회의장의 요청으로 본회의 표결이 미뤄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4월 첫 번째 본회의까지 여야가 협의할 것을 요청했다.
간호법은 지난해 5월 간호사 출신 최연숙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한 가운데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법안이 60일 이상 법사위에 계류되자, 복지위는 지난달 9일 야당 주도로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했다.
이 밖에 방송법 개정안, 안전운임제, 노란봉투법 등 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안들도 본회의 직회부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임위 의석수를 봤을 때 현재 예결위원회를 제외한 전체 상임위 17곳 중 6곳에서 민주당 주도로 직회부가 가능하다.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인 양정숙(정무위원회)·민형배(교육위원회)·박완주(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김홍걸(외교통일위원회)·윤미향(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원 등이 포함된 상임위로, 이 중 외통위를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해당 상임위들의 경우 이견 조정을 위해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에서도 조정위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 단독 의결이 가능하다.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사위로 법안을 상정하거나,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회부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
이 같은 민주당의 입법 추진에 일각에서는 '포퓰리즘 정책'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관리법 통과에 따라 남아도는 쌀이 2024년 38만톤(t)에서 2030년 64만t으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쌀 수매에 투입될 예산도 연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민주당이 추진하는 65세 이상 기초 연금을 현행 월 30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이 통과되면 2030년에는 52조원에 달하는 예산 투입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총선용 포퓰리즘 입법이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거부권 행사가 예견되는 포퓰리즘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가 하면 대통령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 시도를 일삼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를 실패하게 만들고 민생이 어려워야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지난주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꼼수 처리한 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격적 포퓰리즘 매표 행위에 나서고 있다"며 "총선용 매표 입법은 한마디로 매국 행위이고 MZ세대에게 천문학적 빚을 지우는 청년 죽이기, 미래 죽이기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양곡관리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관건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돌려보낸 뒤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재의된 법안이 확정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18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해 169석인 민주당 의원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양곡관리법은 사실상 입법이 어려워진다. 대통령실은 "법률 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양곡관리법 개정안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을 저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거부권) 요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입법 과정마다 단독 처리 강행 카드를 꺼내는 것이 협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는 합의제로 운영돼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를 다수제로 운영하고 있고 다수제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민주주의는 상당한 장기간에 걸쳐 다른 의견을 설득하고 타협하고 하는,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 민주당이 하는 것은 민생 협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양곡관리법의 경우 재배 품목을 바꾸도록 지원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번에 통과한 법안처럼 남은 쌀을 정부가 매입해 농사를 계속하게 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있어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개입"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