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각계 의견을 경청하고 숙고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정황근 장관은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재의 요구안(거부권)을 제안하겠다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오후 문자 공지를 통해 "법률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이 그간 양곡관리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수차례 밝혀온 만큼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재의 요구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호 법안'인 해당 개정안은 국가 재정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고, 쌀 과잉 생산을 조장할 수 있어 농업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것이 대통령실의 기존 판단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관리법 통과에 따라 남아도는 쌀이 2024년 38만톤(t)에서 2030년 64만t으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쌀 수매에 투입될 예산도 연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국회는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명, 기권 7명으로 양곡관리법에 대한 수정안을 가결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쌀값 안정화를 목표로 추진해 왔지만, 정부·여당은 쌀 과잉 공급 등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해왔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거부권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하는 내용은 농가와 농업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수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깊은 유감과 허탈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만약 (양곡관리법이) 통과되면 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생각"이라며 "이후 벌어지는 여러 상황이 있다면 전적으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하면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사용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나 법제처 등의 개정안 검토 등을 거쳐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이 의결되기까지는 2주 안팎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법률안을 15일 이내에 서명·공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