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9일)까지도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막판까지 치열한 협상으로 '예산 정국'을 이끌면서 결국 정기국회 내 예산안 합의에 실패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지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여야가 합의해서 여는 임시국회 내에서만큼은 예산안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두고 끝장 대치할 전운도 감돌고 있는 모양새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은 오는 15일까지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과는 별개로 이날 10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회법상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내에 표결을 진행하지 않으면 폐기된다.
앞서 전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15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또 15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시 현재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 또는 수정안을 표결 처리하겠다고 합의했다. 다만 이 장관 해임건의안은 예산안과 별개로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내년도 예산안만큼이나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민주당은 지난 8일 본회의에 보고한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 이 장관의 해임 추진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예산안 처리가 모든 논의의 선결 과제라는 점을 밝혔다. 때문에 임시국회 내에 '예산 정국' 매듭을 짓더라도,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또 다른 정쟁의 서막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9일 여야 원내대표 및 양당 정책위의장이 '2+2 협의체'를 진행했고, 김 의장 주재하에 회동을 두 차례나 이어갔지만 가장 큰 쟁점인 법인세 최소세율 인하를 두고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여당에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하되 2년 유예 기간을 둔 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라고 제안했지만, 야당에서는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 진행 중 고성이 오갈 정도로 여야는 끝장 대치 상황에서 예산안 담판을 짓지 못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에는 예산안 처리를 할 수 있도록 여야 합의를 적극적으로 돕고자 국회를 방문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도 타협할 수 있는 안을 제시했고, 나름대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야당 입장이 아직 접점을 좁히기에는 완강하니 나머지 결단은 양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더 해주시라(고 했다)"며 "이제 정부가 더 이상 타협안을 제시할 게 없다. 저의 역할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오후 김 의장을 찾아 민주당 단독으로 마련한 수정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본회의를 열더라도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 처리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기획재정부의 예산명세서 작업(시트 작업)에만 최소 12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실적으로 오늘 내 (내년도 예산안이) 정기국회 처리라는 목표를 지금 이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서도 "11일 오후 2시가 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시한이다. 여야 예산안 처리 뿐만 아니라 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도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장이 끝까지 (본회의를) 열지 않을 시 여당과 예산안 쟁점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하지 못해 국민에게 죄송하다면서 반드시 예산을 배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부디 고집을 그만 두고, 정부·여당에 협조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저희는 계속해서 민당을 설득하고 민당의 태도 변화를 호소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이 예산안과 분리돼 협상되는지에 대해서는 "예산만 논의하고 있고, 예산안 처리가 우선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발의해서 보고했다. 24시간 이후 72시간 내에 표결하도록 돼 있다"며 "72시간이 되는 시한이 일요일 오후 2시 10분인데 그 시한이 다가오기 이전에 예산을 합의하고, 해임건의안 문제도 합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김 의장이) 표시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예산 정국'이 임시국회 내에 끝나더라도 여야 정쟁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으로 옮겨지는 일명 '해임 정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을 앞둔 상황이라 '예산 정국'은 결국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며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만 묻는 행동에 불과하고,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받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행안부 장관이 공석이 되면서 '국정 공백'으로 야당이 더 욕을 먹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놓고 여야가 계속해서 대립은 하더라도, 탄핵까진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도 "민주당은 해임건의안을 무조건 밀어붙일 수밖에 없고, 여소야대로 통과될 게 분명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이에 탄핵소추안까지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여야 정쟁이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예산안이 마무리된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끝까지 이상민 장관이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거론할 것이기 때문에 내년까지도 '해임 정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