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예산안 처리 본회의 법정 시한(2일)이 지났지만 여야가 끝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시한 내 예산안 처리가 불발됐다. 예산안 처리를 위해 열릴 예정이었던 2일 본회의는 8·9일로 연기됐다. 여야 갈등 속에 예산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일각에서는 초유의 준예산 실행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 회동을 갖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2023년도 예산안 처리 등에서 합의점을 찾으려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고, 탄핵소추안 검토까지 공식 선언하면서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김 의장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헌법이 정한 예산안의 법정처리 시한이 오늘이지만, 내년도 나라살림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이번에도 정기국회 내에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오는 8일과 9일 양일간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이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과 국민의힘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파행이 맞물리면서 당장 시급한 예산안 처리는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발의한 이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 시 국정조사 진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예산안 처리 후 해임건의안을 발의할 것을 압박했다.

이에 민주당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과 국정조사 및 예산안은 별개 사안으로, 여당이 이를 정략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맞서면서 여야 간 협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여야 갈등은 예산안 심사를 위한 소위에서도 계속됐다. 여야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법정 활동 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에도 내년도 예산안 심사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인 우원식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이철규·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지난달 30일 오전부터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 감액 심사 과정에서 의결되지 못한 사업 예산 115건에 대해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국민의힘 측은 윤석열 정부 공약 사업인 분양주택 1조1393억원, 대통령실 이전 예산, 경찰국 신설 예산 등에 대해 원안 유지를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 측은 분양주택 예산 삭감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9409억원 증액을 주장하면서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무조정실과 국가보훈처 등,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대통령실 관련 예산 삭감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뉴스1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도 파행과 속개를 이어가다 지난달 30일 극적으로 재개됐지만 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회적경제 3법'은 통과시키지 못하고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 처리 이후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준예산이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준예산은 국가 예산이 회계 연도 개시일(1월1일)까지 성립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전년도 예산에 준해 잠정적으로 집행하는 예산을 뜻한다. 준예산 제도는 지난 1960년 3차 개헌으로 가예산 제도가 폐지되고 도입된 이후 62년간 한번도 운용된 적이 없다.

준예산은 '최소한의 국가기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집행된다. 따라서 준예산으로는 서민생활 지원, 국가투자 사업, 지자체 국고보조사업, 재해대책 관련 경비 등의 사업을 집행할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639조원 중 재량지출은 약 297조원이다. 준예산 편성 시에는 이런 재량지출의 대부분이 막힌다.

다만 과거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가 법정 시한을 넘긴 적은 종종 있었지만 연말 막바지에는 모두 본회에서 처리됐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발목잡기'로 준예산 편성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앞세워 정부 예산안에 대한 유례없는 독단과 폭주를 자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예산은 한 푼도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하고 있다"며 "민주당의 발목잡기로 헌정 사상 최초로 준예산이 편성되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준예산 실행 가능성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민주당이 제시한 수정안 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예결위원장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YTN 라디오 '박지훈의 뉴스킹'에 출연해 "정부는 준예산을 하겠다고 하면 그게 훨씬 더 국민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야당이 정부안에서 꼭 막아야 될 예산만 딱 감액하는 수정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