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2마리 '곰이'와 '송강'의 파양 논란이 한동안 계속될 모양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관저에서 키우는 반려견으로 유기견 2마리를 더 입양했다고 밝히면서 신구(新舊) 정부의 '입양 vs 파양' 구도로 치닫고 있다. 구 권력인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현재 권력인 윤석열 정부 사이의 알력 다툼에 반려견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동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동물 외교' 관례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력 간 알력 다툼 사이에서 '파양된 선물'로 전락한 반려견들이 결국 정서적으로 상당한 상처를 받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사람들 사이의 싸움에 동물들이 상처 입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취지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 직전 동물 등 '대통령 선물'의 관리와 관련한 시행령을 개정했다. 정부 입법현황을 보면 지난 2월 당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명의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됐다. 이후 개정안은 지난 3월 29일 공포됐다.
'대통령 선물의 관리'를 규정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제6조의3′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장(대통령 비서실장)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인정되는 '대통령선물'은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신설조항도 포함됐다.
해당 법 조항에 따라 문 전 대통령 임기종료 이전에 풍산개들의 관리권을 대통령기록관이 아니라 양산 사저 비서실로 이관했다면, 양육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 측은 임기 이전에 풍산개들을 양산 평산마을 비서실로 이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퇴임 직후 청와대를 나오면서 문 전 대통령은 '곰이', '송강', 그리고 곰이가 낳은 새끼 7마리 중 '다운이'까지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가 함께 지내왔다.
문제는 해당 개정안에 대통령선물 관리비용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 5월 9일 신구(新舊) 정부의 협약에 의해 '사료비·의료비·사육사 인건비' 명목의 약 250만원의 예산지원 계획이 수립됐다. 이때 문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풍산개 곰이와 송강 반환 의사를 윤석열 정부에 전달했다. 퇴임 전 약속했던 '사육에 필요한 예산을 지급하겠다'는 협약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일명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관련 논란이 거세지자, 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이제 그만들 하자"며 직접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당시) 대통령기록관은 반려 동물을 관리할 시스템이 없었고, 과거처럼 서울대공원에 맡기는 게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있어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아 양육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에 나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2마리 '우리'와 '두리'를 선물받았다. 이후 풍산개 2마리는 그해 11월 서울대공원으로 이관돼 전시되다가 지난 2014년 두 마리 모두 자연사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지금이라도 입양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지만 법적인 근거가 없고, 지금의 감사원이라면 이 논란으로 대통령기록관을 감사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으니 풍산개를 원위치시켜 현 정부가 관리하게 하면 된다"는 취지의 입장도 표명했다. 이어 "내게 입양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 정부가 책임지고 반려동물답게 양육관리하면 될 일"이라며 "반려동물이 대통령기록물이 되는 일이 또 있을 수 있으므로 차제에 시행령을 잘 정비해두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문 전 대통령 측 입장을 정면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시행령 입안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것은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이라며 "시행령 개정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지난 9일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대통령 취임 후 유기견과 유기묘 3마리를 추가로 분양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부부가 키우는 반려견과 반려묘는 기존 7마리에서 총 10마리로 늘었고, 현재 한남동 관저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 논란'에 '유기견·유기묘 입양'으로 대응한 모습이다.
또 여당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결국 풍산개를 '파양'했다고 지적하며 "사료값이 아까웠느냐. 참으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 측이 임기 막판 급하게 시행령을 고치면서 발생한 문제를 윤석열 정부의 탓으로 돌린다"며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신설한 조항에 따르면 현재 풍산개를 기르는데 어떤 법적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 문 전 대통령이 정부에 돌려보내지 않고 키우고 있는 풍산개 '다운이'도 대통령기록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따라 시행령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반환했다면 곰이와 송강이 뿐만 아니라 새끼인 다운이도 반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행안부와 문 전 대통령 양측이 합의한 위탁협약서에도 풍산개 곰이, 송강, 다운이까지 총 세 마리가 모두 위탁 대상으로 올랐다. 현재 풍산개 '곰이'와 송강'은 경북대 부속 동물병원에서 지내고 있고, '다운이'는 문 전 대통령의 양산 평산마을 사저에 머물고 있다.
'풍산개 반환 논란'이 정치권을 휩쓸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동물단체와 전문가들은 정치에 동물을 이용하는 행태를 지적하고 나아가 '동물 외교' 관례를 국가 차원에서 먼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제가 시행되는 만큼, '대통령선물' 혹은 '대통령기록물'로 규정되는 동물들의 거취는 5년 후에 아무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이 과정에서 반려동물이 받는 상처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동물복지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98조 개정 추진을 보고 그 생명 감수성에 환호했고, 그 정신을 열렬히 지지했다"면서 "이번 풍산개 파양 사건을 보며 결국 문재인 정부의 동물 지위 향상 의도는 동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가식적인 행보로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구협은 살아있는 생명을 '기록물'로 규정하는 행태를 비판하며 "국가 원수들끼리 주고받는 '동물 선물'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도 대통령 퇴임 때마다 생명을 선물이랍시고 주고받은 동물들의 사후 처리를 놓고 매번 사회적 홍역을 앓고 있다"며 "정치적 리더들이 동물을 입양하고 그 동물을 끌어안고 애정 넘치는 눈길로 쓰다듬는 사진과 영상으로 몇 번 홍보하고 퇴임할 때는 '국가기록물'이니, '지자체 소유'이니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헌신짝처럼 동물을 버리고 떠나는 사례들을 지겹도록 봐왔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오늘 우리는 정쟁 때문에 생명에 대한 책임을 미련 없이 버리는 리더를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제발 이제는 살아있는 생명을 정쟁에 이용하는 시대는 끝내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려동물보건학과 교수를 역임한 조경 생명문화교육원 대표도"외교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다만 북한과의 특수 관계에서 선물이라고 준 것을 받지 않는 게 외교적으로 결례로 읽힐 수 있다는 정치적 해석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선물이라는 것이 주는 쪽의 의지인데, 반려동물이나 생명은 책임이 부여되고 신중히 고려돼야 할 사안인만큼, 받는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물하는 관례나 문화는 외교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일반 상황에서도 지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민법상 동물은 '재산'의 지위다. 이것을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생명체로 인정되는 만큼, 대통령기록물로 '물건' 취급되는 일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1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포함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물을 선물하는 문화도 개선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