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오는 4일 예산심사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정권 차원의 탄압’이라며 강경 투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정상 집행되는 대신 ‘준예산’으로 집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앞서 2013년에도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성남시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약 일주일 동안 준예산 사태를 겪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위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으로 인한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10년 전 ‘성남시 준예산’ 사태를 불러온 대장동이 이번에는 ‘국가 준예산’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준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처리되지 못할 경우 최소한의 예산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준예산을 집행하게 되면 일단 새 정부가 추진하려던 각종 사업 관련 예산은 전액 쓸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한 관리비, 인건비 등만 지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예산 심사 표류 가능성을 고려해 준예산 편성을 준비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집행까지 이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서 지난 1960년 준예산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지금까지 준예산이 편성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서도 현재 여야 간 대치 전선이 가팔라진 만큼 법정기한(12월 2일)은 물론, 연내 예산안 처리도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올해는 예산이 (법정기한인) 12월 2일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부터 진짜 입법전쟁, 예산전쟁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준예산이 편성된 적은 없지만 정부와 여당의 우려가 깊은 것은 지난 25일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바가 있을 정도로 정국이 격화된 상태여서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보이콧 또한 지난번이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이번 여야 대치 상황은 검찰이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민주당사 내 민주연구원을 압수수색하며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검찰은 김용 민주연구원 부위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김 부원장이 돈을 받은 시점이 민주당 대선 경선 시기와 겹치고, 김 부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선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 점을 들어 이 대표의 대선자금으로 쓰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표 또한 준예산 사태로 곤혹을 치른 바가 있다. 성남시의회는 지난 2012년 12월 31일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2013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다수당인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전체 34석 중 18석)이 등원을 거부해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 찬성) 미달로 자동 산회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쟁점이 되어온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을 반대해왔는데 해당 조례안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2013년도 예산안 등을 회기 안에 처리하지 못했다.
준예산 체제에 들어간 성남시는 당시 임시로 ‘반토막 예산’을 편성해 비상 운영에 착수했다. 기관시설 운영비, 의무지출 경비, 계속 사업비 등 법정 경비만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밖에 없어 대상에서 제외된 각종 민생사업은 중단됐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는 당시 연두 회견에서 “합의가 안 되면 다수당(새누리당)이 다수결로 처리하면 되지 소수당(민주통합당)이나 집행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며 시의회를 압박한 바 있다. 이후 부담을 느낀 시의회는 준예산 체제 일주일 만에 새해 예산을 의결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16년에 벌어진 경기도 준예산 사태에 대해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준예산은 의무지출 외 일체 예산집행이 금지되는 비상사태로 주민이 겪는 피해가 엄청나다”며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걱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