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비속어 논란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의결로까지 이어지며 여야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윤석열 정부 첫 번째 국정감사를 이틀 앞두고 정기국회에서의 협치는 요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해임건의안에 강하게 반발하며 표결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로 표결이 진행됐다. 박 장관 해임건의안은 재석의원 170명 중 찬성 168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박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국회를 통과한 7번째 해임건의안이다.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건 지난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앞서 1955년 임철호 농림부 장관, 19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2016년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바 있다.
현행 헌법상 해임건의안의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과거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해임건의안이 의결된 직후 국무위원이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만 직을 유지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박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거부하면서 윤 대통령은 해임을 거부한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4%를 기록하는 등 하락하는 가운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역시 윤 대통령의 해임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해임건의안 의결 자체가 압박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민주당에서 통과시킨 것"이라며 "과거에는 웬만하면 국무위원이 그만 뒀지만 지금은 그만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타격을 입으라고 통과시킨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다음 날인 지난 30일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김 의장이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상정·처리 과정에서 의장으로서 중립성을 위반하고 편파적 진행을 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결의안에서 "김 의장은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무위원(외교부장관 박진) 해임건의안의 상정과 표결 과정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의사진행을 할 의무가 있음에도 편파적인 진행으로 중립의무를 어겼다"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는 본회의에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쟁점 안건을 상정한 전례가 없었다"며 "김 의장은 야당과 공모해 자신들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국회법을 무시하고, 교섭단체 간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전례 없는 야당의 국익 자해행위"라며 "어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방한 기간 중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낸다는 건 난센스"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다수당이 밀어붙이니 어쩔 수 없이 국회의장께서 (해임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신 것 같다"며 "국회의장님을 탓하기 앞서서 민주당의 온당치 못한 처사였다"고 했다.
민주당도 총공세에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다면 국회의 결정을 수용하라"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지난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됐을 때 한나라당 대변인으로서 김 장관의 해임을 압박한 바 있는 박 장관의 발언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박 장관이 당시 '해임건의안이 묵살되면 헌법 유린'이라고 했다"라며 박 장관을 향해 "인생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달 30일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된 해임건의안을 국무회의 개최 등 별도의 절차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언론 공지를 통해 "오늘 인사혁신처를 통해 '헌법 63조에 따라 박진 장관의 해임을 건의한다'는 국회의 해임 건의문이 대통령실에 통지됐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국회의 해임 건의안을 무조건 수용할 의무가 없고, 또 다른 야당인 정의당도 해임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만큼 거부권 행사에 명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것으로 보인다.
김재수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 2016년 장·차관 워크숍을 주재하며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러한 비상시국에 굳이 해임 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라고 말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이 통과하기 전인 지난 29일 오전에 출근길에서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갖춘 분이고, 지금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며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국민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 생각한다"고 해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