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여권 텃밭인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가 한번 더 기적에 앞장섰으면 좋겠다”며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달라. 대구 정치인들이 비겁하지 않게 독려해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대구 중구 동성로 김광석거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그 검사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대구 시민 여러분이 탄핵의 강을 넘고 압도적인 투표로 그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지난달 26일 법원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 정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이후 처음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발언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尹대통령 향해 “당무 뒤흔들어 놓는 것, 타인 자유 침해”

법원은 이준석 대표가 낸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했으나, 국민의힘은 당헌을 개정해 ‘새 비대위’를 오는 8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오는 5일에는 당헌 개정을 위한 전국위원회가 열린다.

이 대표는 ‘새 비대위’와 관련해 “무엇보다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당헌당규를 졸속으로 소급해서 개정해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덮으려고 하는 행동은 반헌법적”이라며 “절반을 훌쩍 넘는 국민이 이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와중에서도 전국위에서 이것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저들의 헌법무시를 정당 차원에서 막아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사법부의 개입을 이끌어낸다는 이야기다. 부끄러움과 함께 개탄스럽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도 했다. 그는 “당 대표가 내부총질 한다며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도 자유요, 그를 내친 뒤에 뒷담화 하는 것도 자유”라고 지적한 뒤 “하지만 그 자유를 넘어서 당헌당규를 마음대로 개정하고 당무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월권”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시민들에게 “당내 민주주의 부정 대구 의원 꾸짖어달라”

가처분 인용 후 친가가 있는 경북 칠곡에 머물고 있는 이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의 번화가 동성로에서 기자회견을 겸한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구 시민들을 위한 메시지도 기자회견문에 상당수 담겼다.

이 대표는 유승민 전 의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말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정윤회 문건’을 공개했다가 보수진영에서 파문당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구 출신 정치인을 배신자에 간신으로 몰았던 그 광기에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절대자에 대한 맹종만 있었다”며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 당시보다 더 위험하다. 말을 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구 시민들에게 “대구 시민은 항상 보수정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면서 “이 버팀목을 믿고 무리수를 두고 그것에 동조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사법부의 판단마저 무시하려 드는 상황에서 그 앞줄에 선 대구 의원이 있다면 준엄하게 꾸짖어 달라”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총리와 결별하자,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이 13개 대구 의석 중 2개만 차지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2022년 지금, 대구는 다시 한번 죽비를 들어야 한다”며 “대구도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 그들의 침묵에 대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암묵적 동조에 대구는 암묵적으로 추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어 “공천 한번 받아보기 위해 불의에 귀부한다면, 대구도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 그들의 침묵에 대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암묵적 동조에 대구는 암묵적으로 추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달라”며 “권력자의 눈치만 보고 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대구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역사도 근거로 들었다. 이 대표는 “영남 사림의 정신은 왕에게도 직언할 수 있는 용기를 한 축으로, 그리고 퇴계가 26살 어린 고봉과 서찰로 7년간 논쟁하면서 꼰대스럽지 않았던 자유분방함을 또 다른 축으로 한다”며 “이 두 개의 축을 다시 구축해 다시는 지지 않을, 앞장서서 개혁하는 민주적인 정당을 만들어서 대구시민들께 보답하겠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작금의 상황, 지록위마…양심있는 사람 집단린치”

이른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와 ‘신핵관(신 윤핵관)’으로 불리는 초·재선 의원들을 비판하는 내용도 기자회견문에 답겼다.

이 대표는 당 의원총회에서 자신의 ‘양두구육(羊頭狗肉)’ 발언을 문제삼아 중앙윤리위원회에 추가 징계를 촉구한 데 대해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 하나 참지 못해서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은 공부할 만큼 했는데도 지성이 빈곤한 것일까, 아니면 각하가 방귀를 뀌는 때에 맞춰서 시원하시겠다고 심기 경호하는 사람들일까”라고 했다.

이어 “대법원에서도 ‘양두구육’은 문제없는 표현이라고 적시한 마당에 이것을 문제 삼은 사람들은 지시를 받았다면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이고, 지시도 없었는데 호들갑이면 영혼이 없으므로 배지를 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자성어만 보면 흥분하는 우리 당의 의원들을 위해서 작금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면서 “‘윤핵관’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을 때, 왜 초선의원들이 그것을 말이라고 앞다퉈 추인하며 사슴이라고 이야기한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을 집단린치하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시민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저는 금지곡을 계속 부르겠습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저에게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신다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정치가 하나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에게는 굽힘이 없을 것”이라면서 “젊고 유망한 신진 정치인들에게는 자유를 보장하는 울타리가 되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유”라며 “국민 모두, 특히 국민의힘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에 대해 지적할 자유만큼의 윤석열 정부에 대해 지적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대통령인 당원도 당 대표의 행동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내부총질이라고 지적하고 그 모욕적인 내용을 회람할 수도 있다. 그것은 본질에서 동일한 자유”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최근 BTS는 방송국에서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다”며 “예술인이 가사에 누구나 쓰는 ‘새끼’라는 표현을 썼다고 방송이 금지되는 과잉검열의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으면서 병역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그들의 병역면제를 논의하기 위해 나랏돈을 들여서 여론조사를 할지 간보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그는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수에게 노래 부르는 창법을 지적하던 그 세태, 바로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라며 “비유를 하면 조롱하고 비꼰다고 지적하고 사자성어를 쓰면 동물에 사람을 비유한다고 흥분하는 저 협량한 사람들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금지곡을 계속 부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