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지연됐다는 논란이 인 가운데, 여야 차기 대권 잠룡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원희룡 장관은 ‘공약 파기’ 주장을 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를 연이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지사는 분당을 방문해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의지를 보였다. 안철수(경기 성남분당갑) 국민의힘 의원은 판교 등 2기 신도시가지도 재정비 사업에 포함시키겠다며 전선을 확대했다.
◇원희룡 “공약파기는 선동” 김동연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
발단은 원 장관이 지난 16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부동산 대책이다. 원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부동산 대책을 브리핑하면서 향후 5년간 전국에 총 270만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정립을 2024년에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의 1기 신도시 재정비 대선 공약이 지연되는 것이냐는 지적이 부동산 시장에서 나왔다. 야권에서는 ‘공약 파기’라는 표현을 꺼내 들었다. 김 지사는 페이스북에서 “마스터플랜을 2024년에나 수립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선 공약 파기”라며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원 장관은 김 지사를 향해 “선동”이라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1기 신도시 재정비 관련 부분에 “1기 신도시에 양질의 주택 10만호 공급 기반 구축”이라고 적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기 신도시에는 이미 30만호의 주택이 존재한다. 이를 재정비하려면 특별법 제정, 이주대책 등 계획 수립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공약파기’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도 예전 같으면 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을 최대한 단축했다”며 “그런데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고 했다. 부처가 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로, 원 장관에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해석됐다.
하루 뒤 원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1기 신도시 재정비 TF를 즉각 확대·개편하겠다”고 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또 김 지사를 겨냥해 어떠한 권한도 없는 경기지사가 일부 1기 신도시 주민의 정부 비판에 편승해 ‘얄팍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김 지사는 “1기 신도시 문제, 도지사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며 “경기도는 5개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단체장과 시의원, 도의원은 물론 전문가와 시민을 포함하는 TF 운영과 ‘재정비 종합구상 용역’으로 제대로 된 재정비 방향이 국토부 마스터플랜에 담길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도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김 지사의 발언에 “누가 뒷짐지고 있으라고 했나”라고 발끈했다. 그는 “행정절차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만한 충분한 경력까지 갖춘 분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으로 정부와 국민을 갈라치는, 그런 구태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뒤 김 지사는 본격적으로 1기 신도시 관련 활동을 벌였다. 지난 24일에는 분당신도시 수내동의 완공된지 30년 된 아파트를 찾아 주민으로부터 “비 오는 날이면 벽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 자다가 놀라서 뛰어나온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26일에는 일산신도시의 완공 30년 된 아파트를 찾아 누수와 외벽 균열, 내려앉은 천장을 눈으로 확인했다. 일정에는 김병욱(경기 성남분당을), 한준호(경기 고양을)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동행했다.
원 장관에게는 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다. 윤 대통령은 2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원 장관을 보자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 빨리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다. 원 장관은 “잘 알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답했다.
◇안철수 “시장이 용도지역 변경하고 건축규제 완화 특례 주자”
원 장관과 김 지사가 거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여권 잠룡인 안철수(경기 성남분당갑) 의원도 뛰어들었다. 전략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판교를 포함한 2기 신도시까지 정비 대상으로 끌어들여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24일 자신의 1호 법안으로 ‘1·2기 노후신도시 재생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신도시 특별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1기 신도시 정비를 놓고 정부와 야권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1기 신도시인 분당, 2기 신도시인 판교가 지역구인 안 의원이 두 지역을 모두 포함한 지원법을 발의하는 것이다. 2기 신도시는 판교, 위례, 광교, 동탄 등이다.
안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노후신도시 특별법’에 대해 “1·2기 신도시의 리모델링·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고. 광역교통 대책을 수립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노후신도시 특별법주요 내용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노후신도시 재생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노후신도시 재생지역 진흥지구에 대해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수립하도록 한 것이다. 또 신도시가 속한 시의 시장이 용도지역을 변경하고 건축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특례를 둬 도시재생사업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안 의원은 법안에 대해 “1기 신도시는 30년, 2기 신도시는 20년이 흘러 주거환경과 생활 인프라가 많이 노후한 상황”이라며 “신도시의 공공적 가치와 주민 불편을 생각하면 더 이상 재정비를 늦출 수 없다”고 했다.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 2024년 나오면 ‘재건축 총선’될 수도…野 적극 대응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에 내놓겠다고 한 것은 다음 총선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을 내건 당시 여당이 압승한 것처럼, 국민의힘에 험지인 경기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이템을 쟁여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용우(경기 고양정) 비상대책위원은 비대위 회의에서 “2024년에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는 것은 2024년 총선 선거 공약으로 또 희망고문을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분당의 김병욱 의원이 대표를 맡은 ‘1기 신도시 도시재생 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구성했다. 중동 설훈·서영석 의원, 산본 이학영 의원, 평촌 이재정·민병덕, 일산 이용우·홍정민·한준호 의원 등이 구성원이다.
김병욱 의원은 원 장관이 김 지사에게 ‘권한도 없는 경기지사’라고 말한 부분도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국토부 장관의 권한 중 일부를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돌리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25일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광역자치단체장이 정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민주당 부동산TF는 부동산 법제도 개선안 15가지를 마련했고, 그 중 첫 번째로 도시정비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재건축 사업을 위한 안전진단은 국토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기준에 따라 실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안전진단 기준을 광역자치단체장이 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 재건축 계획수립과 추진과정 권한을 광역지자체장으로 일원화 하겠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