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은 21일 대통령 경호처가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경호를 강화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께 관심을 가지고 경호처와 이야기해 현장의 사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시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대통령이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의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만찬 내용을 설명하면서 이 같은 비공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김 의장은 만찬에서 윤 대통령에게 “평산마을의 1인 시위가 점점 과격화하고, 어떤 사람들은 커터칼을 들거나 모의 권총을 가지고 위협하고 있어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나 대통령께서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워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김 의장은 “대통령경호법상 경호처장이 지정하는 경호구역이 현재 100m인데,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소음 피해만이 아니라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경호처장이 현장에 가서 그것을 넓히는 것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윤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국회의장실 조경호 정무수석이 경호처와도 긴밀히 협의해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며 “제가 윤 대통령께 말씀드렸더니 바로 경호처 차장을 이튿날 파견해 조사하고 오늘 보도자료 형태로 발표했다”며 “그런 점에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강화와 관련해 김 의장은 “서너 가지 방안이 있었는데, 우선 빠르게 할 수 있던 것이 경호구역 확대”라고 했다. 이어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뭐라고 얘기를 하면 시위하는 분들이 거기에 대응해 (문제가) 가중되는 속성이 있어서, 일단은 경호처에서 운영을 해보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경호처는 이날 오전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경호구역을 확장해 재지정했다고 밝혔다. 기존 경호 구역은 사저 울타리까지였으나, 이를 울타리부터 최장 300m까지로 넓혔다. 구역 내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교통통제, 안전조치 등 경호경비 차원의 안전 활동도 강화한다. 이 조치는 오는 22일 0시부터 적용된다.
경호처는 “평산마을에서의 집회·시위 과정에서 모의 권총, 커터칼 등 안전 위해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집회·시위 소음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평산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함께 고려했다고 경호처는 설명했다.
경호처의 이번 조치는 윤 대통령의 지난 입장과 다소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7일 출근길 문답에서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집회·시위와 관련,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며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는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집회를 용인하는 태도로 비쳐 야권 인사들의 반발을 샀다.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 강화에 대해 민주당 신현영 대변인은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김 의장, 윤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욕설과 폭력 시위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이번 경호 강화 조치는 법과 원칙의 차원 및 협치와 국민통합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이어 “집회·시위 참석자들도 합법적 방법으로 합리적 비판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15일 저녁 퇴임 후 처음으로 평산마을 산책을 나갔다. 문 전 대통령 퇴임 후 사저 인근에서 석 달 넘게 욕설과 소음을 동반한 1인 시위를 장기간 벌인 60대 남성 A씨는 경호원과 함께 산책하던 문 전 대통령 부부를 향해 다가가 “겁○○○ 없이 어딜 기어 나와” 등 모욕성 발언을 하며 협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튿날인 16일 오전 8시11분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1인 시위를 준비하다가 공업용 커터칼로 주변 사람과 문 전 대통령 비서실 인사를 협박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