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 정부가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현대차의 아이오닉5를 사면 7500달러(약 98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하루 아침에 그만큼 가격이 뛴 셈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에 한국차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상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그룹과 미국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의 합작사인 모셔널이 미국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리프트'와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이오닉5 자율주행 로보택시 '카 헤일링'(차량호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아이오닉 5 로보택시. /모셔널 제공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매년 10만여대의 (한국산 전기차) 수출이 막힐 우려가 있다”며 “국내 자동차 산업의 전환이 어려움에 처하고 관련 부품업체의 적자까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법에 의하면 북미 지역에서 조립·완성한 순수 전기차, 수소전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산차는 대당 7500달러, 한화로 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권 원내대표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한미 FTA의) 내국인 대우 원칙상 한국산 전기차는 북미지역 생산품과 동등한 세제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 협력을 위한 동맹국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태평양경제협력체(IPEF)를 추진하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과 같은 등 유력한 후보국을 배제한다는 것은 IPEF 비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그는 “무엇보다 미국의 세제 차별 조치는 한미 양국의 경제·안보 동맹 강화의 정신에 맞지 않다”며 “정부는 한국산 전기차를 북미산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 즉시 착수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아울러 피해가 예상되는 완성차 기업과 관련 업체에 대한 한시적 보조금이나 법인세 경감 등 지원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막대한 규모의 투자와 일부 증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 예산 규모는 4300억달러(약 558조원)이다. 한국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자동차 관련 조항이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해야 1대당 총 7500달러(약 9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전기차에 장착하는 배터리에 대해서도 광물의 채굴과 제련이 내년부터 40% 이상,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80% 이상 북미(FTA 체결국 포함)에서 이뤄져야 한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도 내년부터 50% 이상이 북미 생산품이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은 전량 한국에서 생산된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5개 모델은 모두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의 70%가 북미 밖에서 제조된다는 이유로 역시 탈락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AP 연합뉴스

권 원내대표는 중국산 전기차에 상호주의를 엄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현재 중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전기차는 중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반면 중국산 전기차는 한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난 정부가 전기차 보급 목표에만 몰두한 나머지 기본적인 상호주의 원칙마저 지키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상반기 중국산 전기 버스·화물차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5배 급증했고, 점유율도 1.1%에서 6.8%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특히 중국산 전기버스는 같은 기간 436대가 팔려 절반에 가까운 48.7%의 점유율을 보였다”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버스가 보조금까지 받아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에 보조금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중국산 전기차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폐지하든지 결정해야 한다”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해 공정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제도적 설계와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