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1월 발생한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놓고 17일 정면 충돌했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입장문을 내놓고 여권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자, 대통령실에서 최영범 홍보수석이 브리핑을 열고 재반박했다. 그러면서 양측 사이에 핵심 쟁점을 놓고 논란이 더 확산되고 있다.

정 전 실장은 이날 사건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입장문을 배포했다. 그는 입장문에서 이 사건에 대해 ‘흉악범’, ‘귀순 의사 진정성 결여’, ‘추방 배경’, ‘처벌 불가능’ 등 쟁점별로 설명했다. 최 수석은 정 전 실장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은 ‘진실 공방’으로 비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6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자필 귀순 의향서 무시” vs “통상의 귀순 과정 아니다”

현재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놓고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부분은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표명했는데, 이들에게 진정성이 있었냐는 것이다. 여권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있고, 야권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 전 실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어민 2명이 2019년 10월 중순 북한 해역에서 동료 선원 16명을 망치와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냥 사람 한두 명 죽인 살인범이 아니라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마들”이라고 했다.

이어 남측으로 넘어온 과정에 대해서도 “이들은 범행 후 바로 남한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애당초 귀순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라며 “범행 후 ‘죽어도 조국에서 죽자’라고 하면서, 동료들이 잡은 오징어를 팔아서 도피 자금을 마련해 북한 내륙 자강도의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기로 모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범행 후 김책항으로 돌아갔으나 도피 자금 마련 중 공범 한 명이 북한 당국에 체포되자 바다로 도주했다는 게 정 전 실장 설명이다. 그러면서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월선을 반복하다가 우리 해군 특전요원들에 의해 나포되어 압송된 것”이라고 했다.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힌 시점에 대해서 정 전 실장은 “이들은 나포된 후 동해항까지 오는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며 “합동신문 과정에서 통상적 절차인 귀순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우리 합신 팀에 귀순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이들이 범행 내용을 합동신문 과정에서 자백했고, 우리 군이 입수한 첩보 내용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도저히 통상의 귀순 과정으로 볼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현 정부가 이 사건을 쟁점화시키는 데 대해 “이들에 대한 전체 조사 내용은 국정원에 보존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조사 내용을 왜곡 조작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의 진술과 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하면 될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영범 수석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당연히 우리 정부 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서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 내렸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북송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것도 궤변이다. 그렇다면 자필로 쓴 귀순 의향서는 왜 무시했단 말이냐”며 “특히 이 사안 본질은 우리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한 탈북 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했다.

2019년 11월 7일 북한 선원 2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되고 있다. /통일부 제공

◇②”흉악범도 우리 사법제도로 재판했어야” vs “자백만으로 한국서 처벌 불가능”

정 전 실장은 당시 강제 북송을 결정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이 16명을 죽인 흉악범인데다 남측에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정 전 실장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이런 흉악범들도 우리 국민으로서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의 자백만으로는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북한지역에서 북한 주민이 다른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 범죄와 관련해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 전례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흉악범’ 어민 2명을 북으로 돌려보낸 것은 한국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고도 했다. 정 전 실장은 “결국 이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우리 사회에 편입될 경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누가 보호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여권은 우리 사법제도로 재판을 받았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참고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며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과거 페스카마호에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들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영범 홍보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③”헌법·국제법 무시” vs “국내법, 중대한 범죄자 추방 규정”

북한에서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고 할지라도, 이들을 북송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정 전 실장은 “우리 국내법도 이런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추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비정치적인 중대범죄자는 국제법상으로도 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 적용되는 관련법으로는 출입국관리법, 난민법이 있다. 출입국관리법상에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난민법으로도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에 대한민국 밖에서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두 법은 모두 외국인에만 적용된다.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민의 적용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정 전 실장은 “1991년 9월 남북한이 두 개의 독립된 주권국가로 유엔에 동시 가입한 이후,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에 관해서도 대법원과 헌재에서는 남북한 관계의 이중성을 인정한다”며 “북한이나 북한 주민에 대하여 외국이나 외국인의 지위에 준하여 개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전 정부는 귀순한 탈북자도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는 국내법과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강제송환금지의 원칙 등 국제법을 무시하며 귀순자의 범죄행위만 부각시켰다”고 비판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법은 북한이탈주민법상에도 국제형사범죄자, 살인 등 중대한 범죄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보호대상자로 지원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강제추방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게 통일부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에 평양소주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김정은 답방용’ 합리적 의심” vs “北은 흉악범 아닌 정치범 원해”

탈북어민 북송 당시 남북관계도 쟁점이다. 이들은 2019년 11월 7월 판문점을 통해 북송됐다. 같은 달 25일에는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노딜’ 이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다시 끌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김정은이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탁현민 당시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김정은 위원장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면서도 “(올 경우를 대비해) 준비를 해놨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은 친서를 주고받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019년 11월 21일 보도에서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이번 (한-아세안) 특별수뇌자(정상)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내왔다”며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에 나가셔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해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의 모친 별세에 즈음해 김정은이 조의문을 보냈고,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답신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권은 탈북어민 북송이 김정은의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었다는 주장을 한다.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지난 14일 논평에서 탈북어민 강제송환을 알리는 통지와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요청하는 문 전 대통령의 친서가 같은 날 북측에 전달됐다면서, “합리적 의심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정 전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을 위해 이들을 강제로 추방했다는 주장은 너무나 터무니없다”며 “북한이 송환을 바라는 탈북민들은 이런 파렴치하고 잔인한 흉악범들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탈북했거나 귀순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정 전 실장은 “북한으로부터 먼저 이들 흉악범들(탈북 어민들)을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도 없었다”며 “다만, 추방할 경우 상대국의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북측에 의사를 먼저 타진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청와대는 신호 정보에만 의존해 탈북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어민들이)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해당 어민의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