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문재인 정부는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생존한 채로 발견됐다는 사실을 숨긴 것으로 6일 드러났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위원장인 하태경 의원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단장을 맡은 하태경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최종 발표 브리핑에서 “이 사건을 한 문장으로 규정하면 한 개인에 대한 조직적인 인권침해와 국가폭력 사건”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TF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실종자가 북측 해역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족은 2020년 9월 22일 오전 10시 이대준 씨의 실종소식을 들었다. 이후 서해에서 2박 3일 간 선원들과 함께 수색했다. 그런데 유족들이 수색을 벌일 때, 같은 시각 이씨는 북측 해역에서 생존해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족이 엉뚱한 구역을 수색하게 됐다는 게 TF 설명이다.

하 의원은 “정부는 (유족이 해상을 수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22일 저녁 6시 30분경 (이대준 씨가) 북측에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하고도 유족에겐 알리지 않았다”라며 “이 사실을 유족들과 바로 공유했다면 구할 수 있었다는 게 TF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희생자 구조 노력 없이 죽음을 방치하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조직적인 월북몰이가 있었다.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호도한 것”이라고 했다. TF는 정부가 이씨와 유족에 대해 조직적인 ‘월북몰이’를 한 정황도 시간대별로 정리해 공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9월 22일 5개 중견국(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협의체인 믹타(MIKTA) 의장국 자격으로 유엔 75주년 기념 고위급회의 대표연설을 영상으로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하루 뒤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26분부터는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해상에서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첩보를 청와대가 입수한 뒤에 사전녹화한 이 영상이 상영됐다. /조선DB

먼저 2020년 9월 22일 오후 6시 35분 문재인 당시 대통령 서면보고에는 ‘추락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있었고, 북측 해역에서 우리 국민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9월 23일 오전 1시부터 오전 2시 30분까지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관계장관회의와 같은 날 오전 10시 관계장관회의를 거쳐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낮다’에서 ‘높다’로 모의했다는 게 TF 설명이다.

또 9월 22일 오후 10시쯤 이씨의 사망을 최종 확인한 뒤에도 정부가 약 35시간 동안 이 사실을 숨긴 채 24일 오전 11시에야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하 의원은 “국민에게는 35시간 동안 ‘사망’을 숨기고 ‘실종’ 사실만 공개하면서 월북 가능성을 암시했다”며 그 근거로 ‘선박에 신발 벗어둔 정황’, ‘월북 가능성 열어뒀다’ 등 내용을 중심으로 한 국방부 발표(9월 23일 오후 1시 30분)를 들었다. 나아가 정부는 9월 24일 오전 관계부처장관회의와 대통령 보고를 통해 월북 판단을 최종적으로 확정했고, 이후 국가안보실 주도로 조직적인 ‘월북몰이’에 착수했다는 게 TF의 주장이다.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26분부터 42분(한국 시각)까지 문 전 대통령이 사전 녹화한 화상 연설이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상영됐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때 청와대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불참한 채 이씨의 사망과 관련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북한군 총격에 피살된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의 형 이래진(가운데)씨와 국민의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소속 하태경 의원 등이 지난 2일 연평도 인근 해역을 운항 중인 국가어업지도선 무궁화 35호에서 이대준씨를 추모하는 위령제를 진행하고 있다. /이래진씨 페이스북 캡처

하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의 유엔총회 종전선언 녹화 발표가 덮힐까 (이씨의) 사망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3일을 거쳐 24일부터본격적인 ‘월북몰이’가 된다”며 “’월북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말이 23일 오후 1시30분에 나온다. 24일 관계장관대책회의에서 월북이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TF는 이런 ‘월북몰이’ 과정에 깊이 관여한 핵심 관련자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2020년 9월 23~24일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지목했다. 이와 함께 서훈 전 실장, 서욱 전 장관,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실장에 대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진상규명과 입장표명을 촉구했다. 하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18시 30분께 이대준 씨의 생존 사실을 보고받고도 구조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며 “대통령지정기록물을 해제해 진상규명에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와 함께 유족과 국민 앞에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