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가 조용히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해외 행보에 김 여사가 동행할 가능성이 크다. 성사되면 김 여사는 국제 외교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용산 대통령실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제2부속실을 부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내달부터 김 여사가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 "김 여사, 나토 배우자 프로그램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

김성한 용산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나토 회담 참석은 나토가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을 초청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정상회담 참석으로 나토 동맹국과 포괄적 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신흥기술과 해양안보, 사이버안보 등 신흥안보 분야에서 나토와 정보공유, 합동훈련, 공동연구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나토 본부가 소재한 벨기에 브뤼셀에 주나토 대표부도 신설한다. 윤 대통령은 약 10개국과 양자 회담도 연다. 원전과 반도체, 신재생 에너지, 방위산업 등 양자 경제 현안을 논의하고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북핵문제 공조 등에서 각국의 협조를 끌어낸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도 나토 정상회의 공식 배우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식적인 배우자 프로그램에 가급적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김 여사는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짧게 인사를 나눈 것 외에 영부인으로서 외교무대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그러나 공식 일정을 소화한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이번이 외교무대 데뷔전인 셈이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함께 스페인 국왕과 만찬 일정에도 참여할 계획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경우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김건희 여사와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초청 오찬'을 마친 후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 김 여사 일부 활동에 따른 긍정적인 메시지 전하기도

관심을 끄는 건 나토 회의를 계기로 김 여사가 공식 일정 참여를 확대할 지 여부다. 현재로선 이를 계기로 김 여사가 여전히 '조용한 내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실에서도 더 이상 '조용한 내조'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 여사는 지난주까지 전직 대통령 부인과 환담, 여당 중진 의원 부인 모임 참석 등 단독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나토 회의 공식 일정 참석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의 공동 일정, 공식 일정 참여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공식적으로는 윤 대통령 취임식, 현충일 추념식, 중앙보훈병원 위로 방문, 국가유공자 초청 오찬 등의 일정 정도에만 윤 대통령과 동행했다. 공식 일정 외에는 야외음악회와 영화관 등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일각에선 김 여사의 행보가 점차 넓어지면서 윤 대통령이 폐지했던 청와대 제2부속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대통령실에선 이를 시행하지 않기고 가닥을 잡고 있다. 김 여사가 조용한 내조가 '조용히'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실제 대통령실 내부에선 최근 소위 '데드크로스(부정이 긍정을 넘음)'를 보이면서 하락세인 윤 대통령 지지율과 김 여사의 행보를 연관시키는 분위기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 감지되기도 한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편가르기식 정치 확대, (윤 대통령에 대한 전통적인) 팬덤 부재, 경제 불안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이유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 여사의 최근 반려동물 인터뷰 후 관련 시민단체들에서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전해줘 접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여사의 다양한 활동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는 걸 애둘러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ㆍ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합창단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