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찰청이 16일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한 것을 뒤집고 공식 사과했다. 해경은 "월북 의도를 인정할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비슷한 취지로 사과했다. '2년 만의 사과'는 2020년 9월 22일 밤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하게 됐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20년 9월 21일 오전 실종…하루 뒤 밤에 北 총격
군(軍) 관계자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인 공무원 A씨는 2020년 9월 21일 오전 11시30분쯤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실종됐다. 오후 1시50분쯤부터는 해군과 해경, 해수부 등 선박 20척과 해경 항공기 2대로 해상에서 정밀수색을 실시했다.
A씨는 하루가 지난 22일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22일 오후 3시40분쯤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1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탑승한, 기진맥진한 상태의 실종자를 최초 발견한 정황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북한 측에선 방독면을 착용한 인원이 A씨의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진술을 들었다. 이후 선박과 부유물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A씨가 유실되지 않도록 했고, 그 뒤 북한군 단속정이 상부 지시로 22일 오후 9시40분쯤 A씨에게 사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그 다음 22일 오후 10시쯤 방독면과 방호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불태웠다. 연평도에 있는 우리 군 감시장비는 시신을 불태우는 불빛을 관측했다.
◇'대통령의 10시간'…靑, 오후 10시30분 첩보 입수 후 다음날 오전 8시30분 보고
A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일정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문 전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당시 야당(국민의힘)과, 문 전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청와대의 주장이 맞섰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발표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이 A씨와 관련한 최초 상황을 서면으로 보고받은 시각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6시 36분이다.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 청와대는 A씨가 북한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은 뒤 불태워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시간 30분 뒤인 다음날 새벽 1시에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는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이 회의는 청와대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회의 개최 사실을 알지 못했다. 2020년 9월 23일 오전 8시 30분,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문 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했다. 첩보를 입수한 후 10시간이 지나서였다.
이 사건은 A씨가 사망하고 하루가 지난 2020년 9월 23일 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군 당국의 공식 발표는 하루 뒤인 2020년 9월 24일 오전 보도를 확인하는 형식으로 나왔다. 당시 국방부는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가 월북하려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고, 2년 뒤인 이날 이에 대해 사과했다.
◇A씨 사망 후 文 '종전선언' 연설 유엔 총회서 상영…아카펠라 공연도
우리 국민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불태워진 후, 문 전 대통령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발표했다.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26분부터 오전 1시 42분까지(한국 시각), 사전에 녹화한 문 전 대통령 화상 연설이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상영됐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연설이었다. 청와대가 A씨가 북한군에 의해 숨졌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의 일이다.
그 뒤에도 문 전 대통령은 A씨의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A씨 관련 첩보를 입수했으나 언론에 공개는 안 됐던 2020년 9월 23일 오전,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서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곧장 나 있는 길이 아니다. 진전이 있다가 때로는 후퇴도 있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평화'를 강조했다.
하루 뒤인 2020년 9월 24일, 문 전 대통령은 A씨의 사망과 관련해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서 NSC 회의가 열리고 있는 시각, 문 전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 참석해 아카펠라 공연 등을 관람했다.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은 분노와 슬픔에 빠졌는데 한가롭게 아카펠라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는지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힌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48시간'…국민의힘 "文,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의문의 48시간"
국민의힘은 A씨가 사망한 후 청와대가 공식 언급하기까지 46시간 40분 걸린 것으로 파악했다. 대통령이 첫 서면 보고를 받은 2020년 9월 22일 저녁 6시36분부터, 당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입장을 발표한 24일 오후 5시15분까지다.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의문의 48시간을 보냈다"며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리는데 대통령은 참석도 안 했고, 신임 국방부 장관과 승진 장성들 신고식에도 언급이 없었다"며 비판했다.
청와대는 보고 체계와 대통령의 움직임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당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힘의 '대통령의 48시간' 공세에 "단 한번의 단호한 결정을 위한 고심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A씨가 북한군에 의해 숨졌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청와대에서 새벽에 열린 긴급 관계장관회의에 대해 강 전 대변인은 "우리 군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멀리 북한 해역에서 불꽃이 감시장비에 관측됐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 "(회의 종료 후) 사실로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6시간 뒤 대통령에게 정식 보고 됐다"고 했다.
◇김정은이 사과하며 보낸 北 통일전선부 통지문, '월북설' 부인
북한은 이 사건 발생 사흘 만인 2020년 9월 25일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측에 "미안하다"고 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 통지문은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청와대 브리핑에서 발표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신 훼손(소각), 월북 시도, 총격 상황, 상부 지시 등 핵심 쟁점에서 우리 군 당국 발표와 상당한 다른 입장을 밝혔다. '월북 시도'라는 문재인 정부 당국의 설명과 달리, 이 통지문은 "(A씨가) 신원 확인에 불응했다"면서 월북설을 사실상 부인했다.
문 전 대통령은 A씨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숨진 뒤 6일이 지난 2020년 9월 28일에서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되었는지 경위와 상관없이 유가족들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북한이 A씨의 월북설을 부인했지만, 당시 당국의 '월북 시도'라는 입장을 담은 발언이다.
또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북한군의 A씨 사살을 사과한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환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