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판명된 2020년 1월 20일부터, 휴일이나 해외 순방 중에도 빠지지 않고 매일 눈뜨면서 처음 읽었고, 상황이 엄중할 때는 하루에 몇 개씩 올라왔던 보고서가 969보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속에는 정부와 방역진,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이 담겨있습니다. 오랜 기간 계속된 국민의 고통과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국민도, 정부도, 대통령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9일 오전 퇴임 연설 중)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임기 내 소회와 대국민 메시지를 담은 퇴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고 9일 오후 6시 공식 퇴임한다. 선대 대통령들처럼 역사가 그를 평가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퇴임 때까지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퇴임사의 표현도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그는 앞서 퇴임 기자회견 대신 특정 언론사 방송에서 저널리스트 손석희 전 JTBC 사장과 단독 대담을 진행했다. 4월 25~26일 이틀에 걸쳐 방송됐는데 생중계가 아닌 녹화방송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원로급 정치인은 최근 기자와 만나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이뤄진 인터뷰였다. 그가 원고를 달달 외운 티가 많이 났다”고 평했다. 그러나 정작 민감한 질문은 손석희 전 사장도 하지 않았다. 현재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혐의는 드러난 것만도 세 가지다. 임기 내내 문 대통령을 따라다녔으나 손석희도 자세히 묻지 않았던 5대 의혹을 짚어본다.

2020년 10월 20일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가 보인다. /연합뉴스

①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대표적인 건 문재인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인 ‘탈(脫)원전’과 관련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동 중단은 언제 되느냐’는 취지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구속됐던 산자부 국장과 서기관을 포함, 당시 장관, 청와대 비서관, 한수원 사장 등이 기소된 상태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조기 폐쇄 결정을 한 월성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틀 뒤 이 사건의 ‘수사 참고 자료’를 검찰에 보냈다. 감사원 자료는 총 7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 자료를 보면 2018년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5명 안팎의 산업부 관료, 그리고 한수원 관계자들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적어서 검찰에 보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들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조기 폐쇄 결정에는 “부당한 업무처리”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 자료는 산업부와 한수원 관련자들의 이름을 낱낱이 거명하면서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역할, 지시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첫 출발점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가까운 질문”이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은 밝히고 있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즉각 폐쇄 결정을 언제 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청와대 한 보좌관에게 계획 등을 물었다는 것이다. 소위 ‘VIP’ 관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런 상황을 고려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경제성이 저평가됐는데도 이를 사실상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4월 청와대 A보좌관은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월성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 하는 취지로 A보좌관에게 물었다. 백운규 장관은 이런 사실을 산업부 B과장에게 보고받고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을 고려해 폐쇄를 결정한다고 하면 다시 가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면서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②청와대 개입 울산시장 선거공작 사건

송철호 울산시장은 이날 오전 중앙지법에 출석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1심 속행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울산 선거 공작 역시 “30년 지기가 당선되는 걸 보고 싶다”는 문재인 대통령 소원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조직 8곳이 뛰어들었고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15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이 사건의 공소장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하는 ‘대통령’이란 세 글자가 여러 차례 나온다.

예를 들어 “피고인 송철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하여 총 8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 및 광역시장 선거 등에서 모두 낙선했는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함에 있어 현직 대통령과 30년 지기이자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인권변호사 3인방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특히 피고인 송철호와 피고인 송병기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과 청와대 등의 지원을 이끌어 내 송철호 후보의 전략공천을 추진하고, 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울산의 여러 현안과 관련하여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집권당의 힘 있는 후보’라는 점을 적극 강조하는 한편”, “피고인 송철호가 문재인 대통령 및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는 점을 활용하여 청와대 주무비서관실 또는 선임행정관 등에게 피고인 송철호의 선거공약 수립 등 선거운동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등 당(黨)·청(靑)과 정기 협의채널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2월 13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 보고회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③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지난 2020년 서울고법 형사2부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여론 조작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경수 지사가 소위 ‘드루킹’ 일당의 댓글 공작을 사실상 주도하면서 2017년5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핵심 당사자다. 대선 여론 조작을 주도한 김경수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최측근이다.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모든 일정을 챙기며 대변인 역할을 했고, 항소심 선고 공판 직전까지도 여권 핵심 지지층이 차기 대선 후보로 밀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런 김경수 지사가 대선 기간 드루킹과 10번이나 만났고, 댓글 조작을 지시하며 보고받고 있었다. 게다가 드루킹을 김경수 지사에게 처음 소개한 송인배씨는 청와대 제1부속 비서관을 지냈다. 또 드루킹 측 인사를 면접했던 백원우 씨는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드루킹 측이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받은 날 김경수 지사가 청와대 조현옥 인사수석과 통화한 기록도 나왔다. 핵심 측근들이 모두 드루킹 측과 접촉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이 드러난 상황이다.

550억원대 이스타항공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무소속 이상직 의원(전북 전주을). /연합뉴스

④구속된 민주당 이상직, 文 사위 특혜 취업 의혹

550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상직 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은 문 대통령의 사위를 타이이스타젯에 특혜 취업 의혹을 받는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2018년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고 4개월 뒤 항공 분야 경력이 전혀 없었던 문 대통령의 사위가 타이이스타젯 전무이사로 채용된 것에 대해 ‘대가성 인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며 지난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선 탈락한 이 전 의원이 문 대통령 집권 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을 거쳐 중진공 이사장에 오르고, 총선에선 민주당 공천을 받아 전북 전주을에서 당선되는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꿰찬 점도 ‘대가성’ 의혹을 더했다.

이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 말 전주지검이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면서 중단됐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전주지검은 이스타항공의 자금 횡령 의혹과 연관된 태국 법인 회사인 타이이스타젯의 박석호 대표를 이미 수차례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딸 다혜씨, 그리고 손자. /조선DB

⑤태국 갔다 돌아와 靑에서 산 딸 문다혜씨

문재인 대통령 사위에 대한 특혜 의혹은 문재인 대통령 딸 문다혜씨 가족의 ‘수상한’ 행적과 얽혀 있다. 다혜씨는 2020년 말 태국에서 입국한 뒤 1년 가까이 아들 서 모 군과 함께 청와대 관저에서 지내고 있었다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다혜씨는 2018년 4월 남편 명의로 돼 있던 서울 구기동 빌라를 증여받았다. 그는 3개월 뒤 해당 빌라를 5억1000만원에 매도하고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태국에 머물던 2019년 5월 서울 양평동 다가구 주택을 대출 없이 7억6000만원가량에 매입했다.

그러다가 정부가 2·4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한 다음 날 9억원에 처분해 1년9개월만에 1억4000만원의 차익을 얻었다. 당시 국민의힘에서는 다혜 씨 주택 구입 1년여 뒤 역 주변이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정됐다는 점, 다혜 씨가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청와대 거주 사실이 전해지자, 국민의힘은 당시 즉각 비판 의견을 냈다. 다혜 씨가 서울 시내 주택을 충분히 살 정도의 재력을 가졌음에도 청와대 관저에서 지내는 것은 특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사건들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사실상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