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선언을 발표한 게 3년이 막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발표한 선언문은, 한반도에서 시작된 역사적 전환을 보여준 뜻깊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첫발은 극적이었지만, 현재의 남북, 북미관계는 그간 만남과 선언이 무색하리만큼 냉랭하다. 3주년을 기념하는 정부 행사마저 열리지 않고, 민간 행사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하는 건 그때의 감격이 난감함으로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비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 경협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 5년의 대북정책을 되짚고 새 정부가 나아갈 길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월 6일 취임 첫 청와대 춘추관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발언하면서 “한반도 통일은 우리 경제가 대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후 장밋빛 통일 경제전망이 속속 제시됐다. 당시 한 경제연구원은 ‘한반도 통일, 과연 대박인가’ 심포지엄 발표에서 “통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50년 6조560억달러(약 7696조원)로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며 “1인당 GDP 역시 2050년 8만6000달러(약 1억929만원)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민주 성향인 문재인 정부는 5년간 남북 경제 협력 분야에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마감하게 됐다. 앞선 정권에서 활발히 운영하던 개성공단조차 이번 정부에선 완전히 활동을 멈췄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해 저자세를 취하면서도 북미관계에 따라 남북관계가 좌지우지된다는 인식이 문 정부에서 팽배함에 따라, 정상적인 소통과 경협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애초 남북 경협 계획 중 일부는 정책 목표가 불명확한 부분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경제 선동의 위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사진은 신의주방직공장으로 신문은 "들끓는 생산 현장에서 경제 선동 활동을 힘있게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1

◇남북 ‘新경제공동체’ 구현?...성과는 없어

7일 정부와 통일연구원의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전력과 정책과제’, ‘한반도 신경제구상 근미래 전략과 주요사업 추진방향’ 보고서와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대북 정책의 명칭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목표 중 하나는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 구현’이었다. 이는 남북이 공존하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아울러 문재인 정부는 ‘잘사는 남북 경제공동체 구축’, ‘3대 경제벨트 구축을 통해 세계로 미래로 도약하는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그리기’,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 이웃 국가와의 경제적 협력 사업 시행’ 등을 남북 경협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청사진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에 걸친 정상 회담에도 불구하고 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실장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등 어쩔 수 없는 문제도 있었지만, 남북 관계보다 북미 관계에 무게를 둔 대북 정책에 따라 경제 협력은 사실상 손도 대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3대 경협벨트 구축’은 한반도 신 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연계추진을 목표로 했다. 이는 남북 경협을 위한 물리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환서해권·환동해권·접경지대(중부권) 등 3개 권역을 묶어 하나의 경제 구역으로 구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 2019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 간 합의를 토대로 적대행위가 중단되면서 DMZ(비무장지대) 평화의길 등 DMZ 일대를 분단 후 첫 민간에 개방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부재했던 데다 통일경제특구 등 관련법도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통일경제특구법은 접경지역인 경기 파주시의 오랜 숙원과제지만, 10년 넘게 국회에서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왔다. 한때 남북정상의 판문점 회담을 계기로 실현 가능성이 커졌으나 결국 이어진 북미 회담 결렬로 폐기되는 수순이다.

아울러 ‘남북인프라 연결’의 목표는 물리적인 연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인프라 연결 논의는 완전히 중단됐다. 통일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남북 인프라 연결 문제에 대한 유엔(UN) 안보리 및 미국의 대북제재 면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확보가 요구되는 사안이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시장 형성을 위한 남북경협 제도화’의 경우에도 남북간 합의의 국회 비준 무산에 더해 특히 북한 당국에 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로 ‘세금만 축냈다’며 여론만 크게 악화됐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경협이 선순환하는 ‘평화경제’의 경우 아예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사립대 교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과거 중단된 내용을 되살리겠다는 정도의 어젠다로 구체적인 실행책은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월 20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뉴스1

◇과거 잘 나가던 개성공단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잊혀져

개성공단 역시 ‘깜깜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폐쇄가 결정되기 직전인 지난 2015년 기준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생산액은 5억6330만달러에 이르렀다. 당시 개성공단 확대가 지속된 점을 고려하면 폐쇄되지 않았다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교역 총액은 지난 2015년 사상 최대인 27억1400만달러였다. 이후 관계 경색으로 일부 정부·민간지원 등 비상업적 거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남북경협은 사라졌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향후 대북제재가 완화된 이후 새로운 규모와 방식의 남북경협이 이뤄질 경우 투자 대비 효과가 10배에 달하는 등 경제 파급효과가 클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남북 일자리 창출 규모도 향후 20년간 각각 326만3000명, 192만2000명씩 총 518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한국의 2025년까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4.6%로, 종전 20년 평균치(3.0%) 대비 1.6%포인트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이번 정권에선 개성공단 사실상 사라진 셈이 됐다는 점이다. 통일경제특구법은 ‘개성공단과 연계한 경제 특구 지정, 특구내 북한주민 방문·접촉 승인절차 간소화, 북한주민 체류·편의 제공, 입주기업에 대한 남북교류협력기금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어 제2 개성공단 조성을 위한 법적·행정적 지원 근거가 되고 있었다.

이미 2005년 파주시가 통일경제특구법 제정과련 연구용역을 시작하고 이듬해인 2006년 여야 의원 100명이 법안 공동발의를 하며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지만 2008년 제17대 국회 폐회와 동시에 법안이 자동 폐기된 이후, 11건의 법안이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10년 넘게 끌어 오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가 아예 멈췄다.

익명을 요청한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개성공단은 기업인들이 방북해서 현황 점검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 조차 못했다. 북한에서 안 받아 줬기 때문”이라며 “남북 정상회담 이후 추가적인 조치가 있었어야 하는데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처럼 남북관계가 인식돼 현실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에선 북한 핵에 대해선 강경책을 쓰더라도 정상적인 소통 회복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비핵화 기조를 강화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설득은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왼쪽)과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