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선언을 발표한 게 3년이 막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발표한 선언문은, 한반도에서 시작된 역사적 전환을 보여준 뜻깊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첫 발은 극적이었지만, 현재의 남북, 북미관계는 그간 만남과 선언이 무색하리만큼 냉랭하다. 3주년을 기념하는 정부 행사마저 열리지 않고, 민간 행사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하는 건 그때의 감격이 난감함으로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비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남북 경협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진단과 제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 5년의 대북정책을 되짚고 새 정부가 나아갈 길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49분, 북한이 남북 정상 간 합의로 개성에 설치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 간 '판문점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에 문을 연 연락사무소는 개소 19개월 만에 사라졌다. 혈세가 순식간에 날아간 것임과 동시에 남북이 상호대표부로 발전시키려던 '평화의 징검다리'가 무너진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돌파구를 찾자"고 손을 내밀었으나 북한은 단계적 보복조치를 강행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그리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된다.

북한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뉴스1

◇ 올해만 미사일 발사 등 12차례 무력시위

문재인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으로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접어들수록 북한의 도발을 강화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지난 3월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까지 총 12차례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중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발사는 10차례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NSC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 직접 국가안전NSC를 주재해 "한반도와 지역,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보고 전례 없이 수위 높은 표현으로 북한을 규탄한 것이다.

이 같은 경고에도 북한은 아랑곳없이 재차 무력 시위를 벌였다. 이는 현 정권과는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무기 시험이 오는 10일 있을 윤석열 정권의 출범과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정상회담을 겨냥해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권이 바뀌어도 북한과의 대화는 이어져야 한다는 청와대의 바람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어 지난 4월 28일엔 현역 육군 대위가 북한 해커의 지령을 받아 군사 기밀을 유출하고 군 전산망 해킹 시도에 도움을 준 사건까지 일어났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이 현역 장병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해 지난 15일 국방부 검찰단에 송치했다. 이번 사건은 북한 해커에게 포섭된 최초의 현역군인 간첩 행위 사건이었다. 안보 공백이 내부에서까지 발생한 것이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위치가 바뀐 국민의힘은 "주적을 망각한 군사력은 공허하다. 북한의 도발에 이어 해킹까지 발생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최종 성적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이 된다고 했었다. 이런 서정적인 헛소리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책임 있는 정치인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적은 북한이다"라고 덧붙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 26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전날 열병식을 성대히 거행했다면서 다양한 무기체계를 공개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 핵 무기의 실제 사용 능력을 과시했다. /뉴스1

◇북핵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는 어그러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사이트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분단 이후 70년 가까이 지속돼 온 남북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다. 남북한이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 번영을 이루며 공존하는 '신 한반도 체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노력과 과정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 ▲북핵문제 해결 및 항구적 평화 정착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 구현 등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서 시작됐다. 이어 ▲2018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선수단 참가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2018~19년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도발이 계속 강화되면서 사실상 존속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낸 '2030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 환경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 여부'를 묻는 말에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진전 없음' 37.3%, '남북관계 발전으로 비핵화 및 평화협정 체결 논의 병행 추진'이 38%로 비등했다. 국책연구원이 정부 임기가 한창일 때 발표한 자료임에도 결과가 이랬다.

대북 정책 관련 청와대 자문위원을 역임한 한 인사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북한은 미국에 대한 장기전을 선포하고 한국에 미사일을 쏘기 시작했다. 사실상 2차 핵무기 고도화가 2019년 5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굉장히 빠르게 가속도를 붙여서 갈 것이라고 봤는데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전략도 바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친서 교환, 정상회담 3번 등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어 정부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걸 신뢰하고 싶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시기적절한 전략적인 대응에 실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남과 북 양 정상은 이날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뉴스1

◇전문가들 "지나친 낙관론과 전략 부재 문제"

지난해 1월 통일부 업무보고엔 '남북간 대화채널 정상화'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 재개 및 정상화 여건 조성'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 및 남북 간 인도적 문제의 실질적 해결'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가 주요 골자로 담겼다. 지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이 사실상의 2차 핵무기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미사일 도발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들이 잔뜩 업무 계획에 담겼던 것이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포함한 대북정책이 '지나친 낙관론'에 사로잡힌 것 아니었냐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4월 29일 "우리가 그동안 애써서 지켜온 평화와 안보 덕분에 우리 정부 5년 동안 단 한 건도 북한과 군사적 충돌이 없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며 "노무현 정부에 이어서 두 번째의 일"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지난달 북한이 4년 4개월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하는 등 모라토리엄(핵실험·ICBM 발사 유예)을 파기한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익명을 요청한 사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 내내 있었던 지나친 낙관론이 임기 막판까지 여전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군 주요 직위자 격려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 실패는 전략 부재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실장은 "북한은 1차 핵무기 고도화를 지난 2014년까지 추진했다. 대화국면으로 전환했던 배경에는 우리 입장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 북한의 의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와 개념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북한은 미국과 대화가 안 되면 한국과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봤다"며 "문 대통령과 현 정부는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선순환을 말하면서 북미관계를 우선에 둬 스스로 족쇄에 갇혔다. 우리가 뒤에 물러선 것으로 관계를 설정하면서 기만당했다. 이는 완전한 전략 실패"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5년의 국정운영 기록을 담아 4월 14일 펴낸 '위대한 국민의 나라'에서 "대북정책이 이념과 색깔론이 아닌, 철저히 평화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다뤄지기를 간곡히 기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최근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핵 개발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확실히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홍 실장은 "윤 당선인은 취임 후 북미가 우선이 아닌 남북미 관계를 중시하는 쪽으로 대북 정책을 가져갈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