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42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최근 돌연 사퇴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노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위원회의에서 “부실 투표 관리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번 사퇴는 선관위 고위 관계자들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 갑자기 이뤄졌다고 한다.
공직선거 관리 총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현직 대법관이다.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하더라도, 대법관 직위는 계속 수행한다. 노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아 2020년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다. 세 가지 방향에서 조 위원장의 돌연한 사퇴 이유를 분석해봤다.
①소쿠리 투표 검찰 수사 본격화
20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는 사전 투표 부실 관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경기남부청 반부패수사계는 지난 5일 제20대 대선 사전투표 관리 및 운영 부실 논란에 휩싸인 노 선관위원장에 대한 고발 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오상종 자유대한호국단 대표 등을 불러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노 위원장은 자진사퇴를 거부하면서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찰의 수사도 받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전격 사퇴함에 따라 수사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정권 교체로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선관위에 대한 압박이 거세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후보 시절 사전투표 논란에 대해 “정권이 바뀌면 그 경위를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지난달 27일 중앙선관위에 간담회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이용호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는 브리핑에서 “중앙선관위가 지난주에 인수위의 간담회 요청에 대해 선관위원 회의를 거친 후에 ‘선례가 없고 선거를 앞두고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지난 대선 사전투표에서 ‘소쿠리 투표’ 등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준비 부실로 국민적 비판이 많았다”며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자 했는데 선관위가 응하지 않은 결정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아쉽고, 또 유감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 위원장 탄핵 소추안 발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정권 교체 시기, 커지는 여권의 압박에 더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함에 따라 스스로 물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②'尹과 인연’ 김필곤 상임선거관리위원장 임명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선인 측과 협의 끝 윤 당선인과 인연이 있는 법조인을 상임선거관리위원장(장관급)에 지명한 타이밍에도 주목한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은 신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 선거관리위원에 김필곤 전 대전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1963년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8년 판사로 임용됐다. 대구지법, 서울고법 판사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대전지법원장을 거쳐 202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났다. 대전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8~2020년 대전시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김 후보자와 윤 당선인은 과거 대구에서 비슷한 시기에 근무한 인연이 있다. ‘과거 인연’을 중시하는 윤 당선인의 내각 인선 스타일로 미뤄봤을 때 앞서 노 위원장을 포함, 진보성향인 우리사법연구회가 장악하던 중앙선관위에 윤 당선인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인선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후보자는 판사 임명 직후 대구지방법원에서 1991~1996년 근무했다. 윤 당선인은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이는 1960년생인 윤 당선인이 3살 많지만, 사법시험은 김 후보자가 7기수 선배다.
일각에서는 6.1 지선에서 김필곤 상임선관위원이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의 직무 대행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노 위원장 후임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대법관이 호선(互選)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지만, 후임 위원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남편 의료법 위반 의혹도 다시 제기
가족을 둘러싼 악재도 나온다. 노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바로 다음 날인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는 ‘클린선거시민연합’ 회원들이 노 위원장 남편을 고발했다. 이들은 “노 위원장의 남편이 의료법과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요양병원 설립 목적으로 취득한 부동산을 매각해 9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이다.
이는 앞서 2020년 10월 27일 노 위원장 청문보고서 채택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인사청문 보고서에서 “노 후보자는 법관의 기본적 책무인 사회적 약자 보호를 충실히 수행해왔다”며 “최초 여성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위원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위원회는 “배우자의 부동산 매각으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려 청렴성에 문제가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노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배우자가 요양병원 설립 목적으로 취득한 부동산을 매각해 시세 차익을 거둔 것과 관련해 “(본인의) 배우자는 20년 가까이 한의사로 일하며 오랜 꿈으로 요양병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기존에 매수한 건물이 소음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조용한 곳으로 옮겨 요양병원을 다시 세운 것으로 투기나 투자 목적이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