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2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했고, ‘검수완박’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정의당과 연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검수완박’ 법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지도 주목된다.
◇민주당, 국민의힘 반대하더라도 강행처리 방침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추인했다고 오영환 원내대변인이 밝혔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없애는 대신 법 시행 시점은 최소 3개월 유예하며, 경찰권력의 상대적인 비대화 방지 방안과 검찰 수사권을 이관하기 위한 기구 설치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일단 4월 국회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없앤 뒤, ‘수사권 공백’ 상황은 추후에 논의하자는 것이다.
오 원내대변인은 “권력기관 2단계 개편 관련 당론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의 수사·기소권은 완전히 분리하고 관련된 법은 4월 중 처리하기로 했다”며 “동시에 경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 통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권 박탈로 상대적으로 권력이 강해지는 경찰에 대해서는 “내용상 경찰 인사권을 투명하게 하고 검찰에 의한 경찰의 직무상 범죄 수사 부분은 통제 기능을 남겨놓는 것으로 설명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치경찰 강화와 장기적으로는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 같은 별도 수사기구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민주당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검수완박’ 법안은 형사소송법 196조에 규정된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등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갖고 있는 6대 범죄 수사권을 명시한 검찰청법 4조의 단서 조항들도 모두 삭제된다.
대신 형사소송법 197조 3항을 신설해 경찰 직무에 관련된 범죄를 비롯한 일부 사안으로만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우선 검찰 수사권을 분리하는 법안을 4월 국회 중에 통과시킨 뒤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및 (윤석열) 정부와 협의해 경찰에 대한 통제 방안과 집행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입법을 국민의힘이 반대할 경우 강행처리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성준 의원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법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고 하는 제안도 했으니 잘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게 잘 안 되면 우리 단독법안을 내 그때도 필요하면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의당 검수완박에 부정적…국민의힘, 힘 합쳐 필리버스터 추진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을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당은 검수완박 폭주를 당장 멈추고, 야당과 형사사법시스템 개선 TF 또는 특위를 구성하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4월 강행 처리를 하려고 한다면 필리버스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며 “정의당과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대해 적극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172석을 가진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입법을 강행할 경우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법안 처리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려면 재적의원 3분의 2(180석)가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172명) 전원에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 4명,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각각 1명,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까지 가세해도 179명으로 1명이 부족하다. 정의당이 민주당에 협조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없고,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가 어려워진다.
박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검수완박’에 대해 “헌법 제12조 제3항과 제16조가 전제하고 있는 검찰의 수사권을 법률로 없애는 것”이라며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빼앗는 데만 급급할 뿐, 해당 수사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중 문제라며 미뤄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민주당 주장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77%에 달하는 27개국이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검수완박이 정말 필요했다면 민주당은 작년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할 것이 아니라 검수완박을 추진했어야 했다”며 “그때와 지금의 유일한 차이는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겼다는 사실 뿐”이라고 지적했다.
50일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검수완박 법안 강행은 대선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며 문 대통령과 이재명 고문을 지키기 위한 방탄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다가올 지방선거, 2년 뒤 총선에서 반드시 ‘자승자박’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5월3일 文대통령 주재 마지막 국무회의서 공포가 목표…정치적 부담
현재까지 청와대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움직임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진성준 의원도 이날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만약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어오면 문 대통령은 임기 종료 직전에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이 ‘방탄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법안을 국무회의에 올려 방망이를 두드려 직접 공포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앞서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이달 내에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공포하는 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은 문 대통령이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날이다.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만,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가 이를 다시 의결한다. 이를 국회가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정의당이 검수완박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숫자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움직임도 변수다. 김 총장이 직을 걸고 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각오를 밝힌 만큼, 국회에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이 통과된다면 문 대통령을 찾아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검찰청은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처리하기로 한 데 대해 “현명한 결정을 기대했는데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