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문재인 정부가 제시했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 목표를 조정할 수 있다고 12일 시사했다. 탈(脫)원전을 기반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탄소중립에 역행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인수위는 국제 사회와 약속한 NDC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저 전력으로서의 원전을 포함한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에너지 믹스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元 “이미 국제사회 약속한 NDC 목표치 벗어나”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방향’ 브리핑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제시한 것’에 대해 “절대 불변은 아니다. 상황과 변수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 상황,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보듯이 전체 미래 기술과 에너지 안보에 큰 변화와 재조정 과정에 있다”며 “지금 앞서갈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 질서를 바꾸는 와중에서 적응과 재조정 과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원 위원장은 “이미 민주당 정권의 ‘탄소중립 열차’는 국제사회와 약속한 NDC를 이탈해 산꼭대기로 가고 있다”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에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와 역행하고 있다”는 게 원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도 연결돼 있다. 그는 대선 공약을 통해 NDC 달성 방안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원자력을 기저발전으로 한 적합한 재생에너지 확충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방안 전면 수정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등을 공약했다. 원 본부장은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은 물론 가야 할 길”이라며 “다만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에 관한 정직하고 현실성과 책임감이 있는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게 잠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함께 브리핑한 김상협 인수위 상임 기획위원은 “2050년까지 70% 재생에너지 달성 목표는 제주도의 사례처럼 실현이 불가능하다”며 “24시간 전력 공급이 가능한 기저발전으로서의 원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탈원전 기반 에너지정책, GDP 연간 0.5%p 감축 요인”
이런 배경에는 탈원전을 기반으로 한 현 에너지정책의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 인수위 측 설명이다. 인수위 기획위원회 기후·에너지 팀이 관련 부처 업무보고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에 비해 4.16%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원전은 감소한 반면 석탄발전 소폭 증가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16% 급증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인수위는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201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을 낮춘 2017년의 경우 2.5% 증가, 2018년 2.3% 증가세로 반전했으며 원전 가동률이 높아진 2019년 –3.5%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7.5%로 감소한 바 있다. 한편, 전기요금 총괄원가의 80%를 차지하는 한전의 전력구입비는 원전의 발전량 감소로 인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13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5년간 원전 설비용량 자체가 줄고(3%p), 기존 설비의 평균 이용률도 줄어들어 (10.1%p) 재생에너지, LNG발전등 원가가 높은 타 발전원으로부터 전력 구매를 늘렸기 때문이다.
원 본부장은 “이로 인한 한전의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문 정부는 전기료 인상 부담을 대부분 다음 정부로 전가, 한전 부채의 급증과 더불어 갈수록 커다란 민생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인수위는 이 같은 상황과 더불어 2050 신재생 에너지 비중 70% 등 문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그대로 추진할 경우 2050년까지 매년 4∼6%의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이러한 부담은 전력 부문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로도 가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2021년 비공개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 2030년까지 연평균 0.7% 포인트의 GDP 감소 영향을, 2050년까지는 연평균 0.5% 포인트의 GDP 감소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됐다. 물가 측면에서도 전기료 인상을 비롯, 탄소 가격과 생산비용 증가 등으로 상승 압박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KDI는 분석했다.
◇“정치적 대립 아닌 국가 미래 전략으로 봐 달라”
다만, 인수위는 에너지 정책 수술 예고에 대해 정치적인 대립이 아닌 국가 미래 전략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탄소중립 5년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다음 정부에서 에너지 믹스 정책은 바뀔 수 있지만, 탄소중립 정책의 근간은 변함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그간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 추세에 있다가 2018년 정점 이후 실질적인 감소세로 전환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고, 이런 흐름에서 다음 정부로 넘어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이라고도 했다.
원 본부장은 “오늘은 중간 보고 성격으로 이해해 달라”며 “디테일은 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취합하고 국가 미래를 위해 결정할 내용이다.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거나 세부 정책 사안을 놓고 뭐를 먼저 정하고 끼어 맞추는 식으로는 접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원전 재가동 등은 더 책임있게 고민할 문제”라며 “반대진영과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문가 등 사회적인 의견 수렴을 위해 공청회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에너지 정책은 ‘기술중립’에 의거 국제적인 안목과 경력을 가진 최고의 전문가들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인수위는 정치적 결정이 아닌 기술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에너지 믹스 방안을 마련해 연말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 반영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앞서 올해 8월까지는 글로벌 추세에 따라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키겠다고도 했다. 김 위원은 “탄소배출권 제3자 확대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가속화 해 녹색금융을 제대로 자리잡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