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대구가 보수 진영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지역 텃밭 맹주를 자처하는 홍준표 의원과 전직 당 지도부 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대결 구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각축을 벌이게 됐다. 고향인 대구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이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4일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사저 앞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뉴스1

앞서 박 전 대통령은 대구로 돌아오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출마로 현실화된 상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좋은 인재들이 저의 고향인 대구의 도약을 이루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지방선거를 61일 앞둔 지난 1일,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해 온 최측근 유 변호사는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유 변호사는 국민의힘 대구시당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후원회 회장을 맡아주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대구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유영하 변호사의 3파전이 될 전망이다. 앞서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맞붙었던 홍 의원은 지난달 31일 대구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홍 의원은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중앙정치보다 대구를 일으키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했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1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당내 경선은 비박(非朴) 1명과 친박(親朴) 2명의 구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김 전 위원은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는 옛 친박계의 핵심으로 ‘진박(眞朴·진짜 친박) 감별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윤 당선인을 직접 영입하겠다며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됐다. 그러면서 홍 의원으로부터 “진박 감별사로 나라와 박근혜 정권을 망친 사람이 ‘진윤 감별사’로 다시 등장해 당을 수렁에 빠트리고 새털처럼 가벼운 입으로 야당을 농단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최근 박 전 대통령의 사저 마련에도 도움을 준 유 변호사는 지난 2016년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친박계 공천에 반기를 들며 ‘옥새 파동’을 일으킨 이유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 전 대표는 “몇몇 선거구에 대한 공직관리위원회 추천장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했다.

반면 홍 의원은 2017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맡았을 때 박 전 대통령을 출당 조치했다. 당시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당시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다. 홍 의원은 탈당 권유에도 박 전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자 당대표 직권으로 출당을 결정했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전 대구 수성구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1지방선거 대구시장직 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홍 의원은 이번 대선 국민의힘 후보 경선 때는 표심을 잡기 위해 강제 출당 조치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비록 그것이 문재인 정권의 좌파개헌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해도 당원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며 사과했다. 또 취임 즉시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약속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예전만큼 결정적이진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과거 친박 인사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당분간은 정치계에서 물러나 계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반면, 대구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인 만큼 그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적 유대감과 지지가 계속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구는 박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영향력이 클 수 있다”며 “또 탄핵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볼 때가 됐는데,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탄핵 재해석의 진원지는 대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지지 유세에 나설지도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대구시민들 앞에 나서 유 변호사 지지를 요청하는 유세를 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유 변호사는 지난 1일 출마 선언을 하며 “박 전 대통령께서 건강상 시민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다”며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짧은 동영상을 통해서 시민들께 인사드릴 수는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