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제작한 내년도 업무용 탁상달력에 김일성·김정일의 생일 등 북한 기념일이 붉은 색 글씨로 적힌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북한의 기념일까지 챙겨주냐"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고, 통일부는 "일방적인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9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묘역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1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제작한 내년도 탁상달력 2월 부분을 보면 화요일인 8일과 수요일인 16일에 각각 빨간 글씨로 '북(北), 조선인민군 창건일(48)' '북, 김정일 생일(42)'이라고 적혀 있다. 괄호 안 숫자는 인민군이 창건된 1948년과 김정일이 태어난 1942년을 뜻한다. 2월 1일에 적힌 '설날'과 같은 붉은색이다. 김일성 생일도 4월 15일 달력에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9월 9일 '북, 정권수립일(48)'도 붉은색으로 표기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인 1월 8일은 '북, 김정은 위원장 생일(84)'로 표기돼 있는데,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검은색 글씨다.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발표(16)' '북, 핵무기 보유 선언(05)', 12일 '북 3차 핵실험(13)', 19일 '남북 기본합의서 발효(92),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92)' 등은 검은 글씨로 표기돼 있다.

이에 대해 황규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기념일까지 챙겨주자는 말인가"라며 "통일부의 황당한 달력 배포는 결국 이 정권이 4년간 그렇게나 당하고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달력의 전략 회수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사과를 촉구했다.

통일부가 제작한 내년도 달력. /태영호 의원실 제공

그러자 통일부는 과거부터 내부 참고용으로 제작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통일부 달력은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통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남북관계 관련 업무에 참고해야 할 북한의 주요 일정 등을 담아 내부 참고용으로 제작해 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일부에서 이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일방적으로 비난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달력은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제작됐다. 달력에는 북한 기념일 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와 북한의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 등 남북관계 주요 사건도 기재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비판을 이어갔다. 임태희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상황본부장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탁상달력 뿐 아니라 업무용 수첩에도 북한 정권이 기리는 4대 국경일이 붉은 색으로 표기돼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10주기인 17일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중앙추모대회를 개최했다. 왼쪽 5번째부터 주석단에 선 리일환 당 비서, 박정천 당 비서,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오수용 당 비서, 김재룡 조직지도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김여정 당 부부장.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임 본부장은 "2021년 업무수첩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내년도, 2022년도 업무수첩에 처음 들어가 있다"며 "이인영 장관의 지침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도대체 어떤 배경으로 업무수첩에 북한의 4대 국경일을 빨간 색으로 해놓은 것인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장관은 깨끗이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내부 업무 참고용'이라는 통일부 해명에 대해선 "통일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빨갛게 안 써놔도 다 안다. 김정일·김정은 생일 모르는 직원 있겠나"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