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가전략기술' 지정에서 제외된 수소 분야도 혜택을 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글로벌 수소 산업 선점을 위해 파격적인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업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9일 복수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가전략기술' 지정에서 제외된 수소 분야도 반도체, 배터리, 백신처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논의가 조만간 정부 내부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국회는 지난 2일 세입예산 부수 법안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등 신성장 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조세특례제한법(이하 조특법) 개정안에는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연구개발(R&D), 시설 투자에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R&D 비용의 세액공제 적용 기한을 3년 연장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대해 2024년 12월 31일까지 현행 신성장·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시설투자의 경우보다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신성장·원천기술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24년 12월 31일까지로 3년 연장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국가전략기술을 반도체와 배터리, 코로나19 백신 등 '3대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코로나19 피해 극복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초격차 전략 마련에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결과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기술에 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현재 최대 3%에서 2배 이상 높은 6%로 올라가고, R&D 투자도 최대 40~50%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국회 기재위는 조특법 개정안 부대 의견으로 수소 기술에 대해서도 세제지원을 확대하라는 주문을 기재부에 제시했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조특법 개정안 대안 자료에 따르면, 기재위는 부대 의견을 통해 '기획재정부는 국가전략기술 세부범위를 정할 때 제도의 취지를 감안해 다양한 기술이 반영될 수 있도록 검토하고, 국가전략기술과 국가전략기술 외의 기술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에 대해 공제대상 투자금액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방안을 검토해 시행령 개정시 반영하라"고 명시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신성장-원천기술 대상 기술에 수소 분야 기술 등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주요 기술을 검토해 시행령 개정시 반영해야할 것"이라고도 명시됐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의 통합세액공제상 수도권 과밀 지역 이외의 시설투자에는 1%의 기본 공제율이 적용된다. 신성장·원천기술에 대해서는 최대 3%의 세액공제가 적용되는데, 기재위 부대의견에 따라 수소 분야의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1%에서 3%로 올라가게 된 셈이다. 이는 애초 기재부가 계획했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중심의 전략기술 세제 지원에 비해 지원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앞서 지난달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는 안을 두고 협의를 벌였다. 협의에서 산업부는 수소를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할 것을 기재부에 제안했다. 오는 2050년까지 국내 수소 수요 100%를 청정수소로 공급하는 등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 계획'에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관련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청정수소 생산 기술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이 없어 기업을 유인할 요인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기재부는 국가전략기술 선정 조건을 감안할 때 수소를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반대했다. 국가전략기술 대상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만큼 수소 산업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처럼 글로벌 수소 산업 선점을 위해 파격적인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제기됐지만, 세제 당국인 기재부의 반대를 넘지는 못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서 수소가 빠진 배경이다.
그러나 기재부 구상은 기재위 국정감사와 조세소위 논의 과정에서 틀어졌다. 현 정부가 3대 전략 투자 분야로 선정하기까지 했던 수소산업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수소 지원법안을 발의한 기재위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반도체, 배터리, 백신에 못지 않은 블루오션인 수소산업 기술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홍남기 부총리는 부족한 부분을 살펴보겠다며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특히 기재위 야당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조세소위 소소위 논의 과정에서 "왜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빅3만 지원을 받느냐"며 이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과 수소 분야를 언급했다고 한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그린 뉴딜의 핵심 사업으로 수소 경제를 지목하면서 세제지원이 전무했던 현재 상황에 비판이 상당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14일 자료를 내고, 기업 10곳 가운데 8곳(81.3%)이 탄소중립의 핵심 기술인 그린수소 등이 신성장 기술이 세법상 신성장 기술에 반영되지 않아 세제지원을 받지 못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한 사업일수록 정부가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에 없던 지원 방안이 나올수록 민간 기업은 사업에 대해 보다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각국은 공제 대상이 되는 신기술을 폭넓게 인정하고 R&D 활동에 대한 세제 지원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한 에너지 대기업 고위 임원은 "법개정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소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며 "'O'와 'X'중 O는 아니나 '△'정도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기재위 관계자는 "야당 간사로부터 부대 의견이 제시된 만큼 차후 다시 논의를 이어가야할 사안"이라며 "다만 아직 법안소위 등의 일정은 확정된 바가 없다. 꼭 연내 처리해야 하는 사안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기재위 관계자도 "여야와 정부가 합의한 부대 의견이 제시되었고, 기재위에서 향후 시행령 개정 결과를 보고하라는 주문이 있었던 만큼 수소차와 충전소에 국한된 지원이 인프라 확충 등 수소경제 생태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