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요구하고 있는 내년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예산 확대에 야당인 국민의힘도 사실상 동의하는 분위기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을 정부안보다 증액하는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앞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관련 예산이 올해 기준 1조2522억원(발행액 기준 21조원)에서 내년 2403억원(6조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이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 추진한 역점사업이자 대선 공약이지만,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상품권 할인 형태로 웃돈을 쥐어 주는 구조인 만큼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산 심의 초반만 하더라도 완강하게 반대했던 정부도 큰 틀에서는 증액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감액 심사가 완료되는 대로 이번 주 중 증액 심사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전국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발행비용, 소비자 후생손실,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예산 낭비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면서 지역화폐 발행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 학원비도 지역화폐로... 선거 앞 자영업자·학부모 눈치?
예결위 야당 간사인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지역화폐 사업 증액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지자체장들의 요구가 있었고 일정 부분 수용하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30조원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한다"며 "적정 증액 규모 등에 대해선 당의 입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자영업자 농성장을 찾아 "지역화폐 예산을 작년 액수로 복귀시키는 것은 기본"이라며 "그 이상인 30조원으로 늘려주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지역화폐 예산을 6조원에서 21조원 규모로 대폭 상승시키겠다"고 했다.
이처럼 여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역 표심을 주도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자녀 교육비 등에서 할인 효과를 누려온 30~40대 유권자들도 이 사업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학원 및 학습자재 업종은 건당 결재 규모가 큰데, 이를 신용카드가 아닌 지역사랑상품권으로 결재하면 사실상 10% 할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대전세종연구원일 발간한 '대전광역시 지역화폐 온통대전 얼마나 통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 1건당 지출 결제 금액 상위 5개 업종은 가구, 가례서비스, 통신판매, 학원, 학습자재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민주당은 야당이 반대했던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다르게 지역화폐 예산 증액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맹성규 의원은 "아직 증액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역화폐 예산 확대와 관련해) 야당의 온도가 차갑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소상공인 손실보상, 위드코로나 방역 강화 등의 예산 증액은 여야가 이견 없이 모두 동의하는 안"이라고 했다.
◇ 정부도 발행액 확대는 기정사실화... 정부 할인지원비율이 쟁점될 듯
관건은 정부의 입장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소비자들이 액면가의 10%가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데, 이 금액만큼의 웃돈을 지원하는 것이 중앙정부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100만원어치 상품권을 90만원에 구매하도록 중앙정부가 4만~8만, 지자체가 2만~6만원을 보전해주는 식이다. 올해 중앙정부 10%포인트 중 4~8%포인트를, 지자체는 2~6%포인트를 지원했다. 기재부는 이같은 할인 지원을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사업'으로 부르며,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 1조252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지난 8월 내년도 예산 정부안을 발표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사업 예산을 2403억원으로 대폭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체 발행규모와 국고지원비율을 동시에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2021년도는 총 20조2000억원어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액의 4~8%를 국고로 지원했는데, 2022년도는 국고 지원 발행 규모를 6조원으로 줄이고 국고지원 비율도 4%로 단일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존 구상이었다.
다만 이재명 후보가 내년도 예산안 발표 이후 연일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사업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민주당도 이에 동조하면서 기재부도 이미 입장을 바꾼 상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예결위에서 "중앙정부가 할인지원을 뒷받침해주는 지역사랑상품권(발행액)이 20조원에서 6조원으로 갑자기 줄였다는 비판적 지적도 많았고 코로나 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며 "6조원보다 늘리는 방향으로 국회에서 계수조정소위 할 때 적극 임해서 좀 늘리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 지원규모 늘수록 고소득·수도권 혜택 늘어나는 '역진성' 함정
여야 정치권과 기재부가 모두 내년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액을 최초 정부안 6조원보다는 늘려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6조원과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제시한 21조원 사이에서 내년도 총발행액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민주당이 국고지원비율보다 발행총액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는 점도 향후 협의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접근해 국고지원비율을 절반으로 깎으면, 중앙정부 예산은 같아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액을 2배로 늘릴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발행 주체인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발행 규모가 차등화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재정 여건이 좋은 수도권 등 일부 지자체에게만 좋은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국회 행안위는 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에서 "전국 232개 지자체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폭) 예산 삭감은 지자체 재정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많이 쓸 수록 정부나 지자체의 할인 지원을 더 많이 받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한정된 공공 재원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을 전면에 내세울 수록 '지역균형발전'과 '억강부약(抑强扶弱·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라는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깃발이 빛이 바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5일 국회 예결특위 종합정책질의에서 "전국이 다 똑같이 해버리니까 오히려 지역화폐가 초기 가졌던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혜택이 크게 가는 역진적(逆進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