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한 ‘사과’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옛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조카를 변호한 것을 사과하면서, 해당 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 문제”라고 했다.
◇野 “피해 가족 아픔 두 번 헤치는 ‘말로만’ 사과”
국민의힘 선대위 전주혜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이 후보가 변호한 사건은 결코 단순한 데이트폭력 사건이 아니다”라며 “조카가 결별한 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모녀를 칼로 총 37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하고, 부친은 5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던 ‘흉악범죄’”라고 했다. 그는“흉악 살인 범죄를 변호하면서 충동 조절 능력 저하나 심신 미약 상태를 주장한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며 “국가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약자에 대한 기본 인식과 공감 능력의 심각한 부재”라고 비판했다.
선대위 김은혜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15년 전 어버이날 새벽 교제했던 여성과 어머니를 찔러 살해하고 아버지마저 노렸던 잔혹한 모녀 살인을 우리는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 후보의 ‘페이스북 사과’에 대해 “피해가족의 아픔을 두 번 헤치는 ‘말로만’ 사과, 유엔의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전략적으로 맞춘 대선용 ‘털고 가기’ 아닌가”라고 했다.
선대위 김병민 대변인은 전날(25일) 이 후보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조카의 ‘모녀 살인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밝힌 양형 이유 중 눈 여겨 볼 부분이 있다”며 “(가해자가)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충격을 주었음에도 전혀 피해 회복을 하지 않았고, 병원 치료를 받은 옛 여자친구의 부친에게 치료비의 일부도 지급하지 않은 점을 적시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범행 이후 유족들을 대한 태도를 보며 법원은 선처할 이유가 없음을 밝힌 것”이라며 “삶의 궤적이 인생의 지문이 되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했다.
김재연 진보당(통합진보당의 후신) 대선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를 향해 “마트에서 33㎝의 부엌칼과 투명 테이프 5개를 구매한 뒤, 과거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여성과 그의 모친의 손을 테이프로 묶고 칼로 37회 찔러 살해한 행위를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다니요”라고 했다.
김 후보는 “살인범에 대해 ‘심신미약 감형’을 주장했던 변호인이 15년 만에 내놓은 발언이 이 정도라니 참담하다”며 “UN이 정한 ‘여성폭력추방의 날’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라면, 더욱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썼다.
◇이재명 “제게도 이 사건은 고통스런 기억” 피해자 부친 “사과 한 번 없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4일 “데이트폭력은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고 처참히 망가뜨리는 중범죄”라면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 나아가 모든 국민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제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제 일가 중 한 사람이 과거 데이트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돼 일가 중 유일한 변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게도 이 사건은 평생 지우지 못할 고통스런 기억”이라고 적었다.
이 후보가 말한 ‘데이트 폭력’은 2006년 5월 서울 강동구에서 벌어진 ‘모녀 살인 사건’을 말한다. 이 후보 조카 김모씨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살던 집을 찾아가 흉기로 옛 여자 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각각 19번, 18번 찔러 살해했다. 옛 여자친구 부친도 사건 당시 5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이 후보는 이 사건 가해자인 조카의 1·2심 재판 변호를 맡았다. 김씨는 2007년 2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후보는 당시 조카를 변호하며 ‘충동 조절 능력 저하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감형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딸과 아내를 잃고, 자신도 부상을 입은 A씨는 이날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15년이 지났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심장이 저릿저릿하다”며 “이 후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또 “사건 당시에도 사과는 없었고, 현재까지도 이 후보 일가 측으로부터 사과 연락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갑자기 TV에서 사과 비슷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전남 신안군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카를 변호했던 것에 대해 “변호사라서 변호했다”며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조카 변호 관련 질문이 다시 나오자, “그 얘기 좀 그만 하자. 아까 했는데”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