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한 ‘사과’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옛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조카를 변호한 것을 사과하면서, 해당 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월 31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상암 농구장에서 2030 여성들과 '넷볼'(영국에서 농구를 모방해 만들어진 여성 전용 스포츠) 경기를 체험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野 “피해 가족 아픔 두 번 헤치는 ‘말로만’ 사과”

국민의힘 선대위 전주혜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이 후보가 변호한 사건은 결코 단순한 데이트폭력 사건이 아니다”라며 “조카가 결별한 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모녀를 칼로 총 37차례 찔러 잔인하게 살해하고, 부친은 5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던 ‘흉악범죄’”라고 했다. 그는“흉악 살인 범죄를 변호하면서 충동 조절 능력 저하나 심신 미약 상태를 주장한 사람이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며 “국가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약자에 대한 기본 인식과 공감 능력의 심각한 부재”라고 비판했다.

선대위 김은혜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15년 전 어버이날 새벽 교제했던 여성과 어머니를 찔러 살해하고 아버지마저 노렸던 잔혹한 모녀 살인을 우리는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 후보의 ‘페이스북 사과’에 대해 “피해가족의 아픔을 두 번 헤치는 ‘말로만’ 사과, 유엔의 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전략적으로 맞춘 대선용 ‘털고 가기’ 아닌가”라고 했다.

선대위 김병민 대변인은 전날(25일) 이 후보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조카의 ‘모녀 살인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밝힌 양형 이유 중 눈 여겨 볼 부분이 있다”며 “(가해자가)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충격을 주었음에도 전혀 피해 회복을 하지 않았고, 병원 치료를 받은 옛 여자친구의 부친에게 치료비의 일부도 지급하지 않은 점을 적시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범행 이후 유족들을 대한 태도를 보며 법원은 선처할 이유가 없음을 밝힌 것”이라며 “삶의 궤적이 인생의 지문이 되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했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김재연 진보당(통합진보당의 후신) 대선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이 후보를 향해 “마트에서 33㎝의 부엌칼과 투명 테이프 5개를 구매한 뒤, 과거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여성과 그의 모친의 손을 테이프로 묶고 칼로 37회 찔러 살해한 행위를 ‘데이트폭력’이라고 부르다니요”라고 했다.

김 후보는 “살인범에 대해 ‘심신미약 감형’을 주장했던 변호인이 15년 만에 내놓은 발언이 이 정도라니 참담하다”며 “UN이 정한 ‘여성폭력추방의 날’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라면, 더욱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썼다.

◇이재명 “제게도 이 사건은 고통스런 기억” 피해자 부친 “사과 한 번 없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4일 “데이트폭력은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고 처참히 망가뜨리는 중범죄”라면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 나아가 모든 국민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제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제 일가 중 한 사람이 과거 데이트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돼 일가 중 유일한 변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게도 이 사건은 평생 지우지 못할 고통스런 기억”이라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전남 목포시 동부시장을 방문, 즉석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가 말한 ‘데이트 폭력’은 2006년 5월 서울 강동구에서 벌어진 ‘모녀 살인 사건’을 말한다. 이 후보 조카 김모씨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살던 집을 찾아가 흉기로 옛 여자 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각각 19번, 18번 찔러 살해했다. 옛 여자친구 부친도 사건 당시 5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이 후보는 이 사건 가해자인 조카의 1·2심 재판 변호를 맡았다. 김씨는 2007년 2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후보는 당시 조카를 변호하며 ‘충동 조절 능력 저하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감형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딸과 아내를 잃고, 자신도 부상을 입은 A씨는 이날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15년이 지났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심장이 저릿저릿하다”며 “이 후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또 “사건 당시에도 사과는 없었고, 현재까지도 이 후보 일가 측으로부터 사과 연락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갑자기 TV에서 사과 비슷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전남 신안군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카를 변호했던 것에 대해 “변호사라서 변호했다”며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조카 변호 관련 질문이 다시 나오자, “그 얘기 좀 그만 하자. 아까 했는데”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페이스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