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정치권에서는 '독재자'의 사망에 대한 입장이 뚜렷한 여권에 비해 야권과 윤 후보가 다시 한 번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전 대통령의 별세에 대한 대응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은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온도차 보이는 與野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의 별세를 두고 여야의 입장에 온도차가 감지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오전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전 전 대통령 빈소를 조문할 계획이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최하 수백 명의 사람을 살상하고 자신의 사적 욕망을 위해 국가권력을 찬탈했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하거나 국민께 사과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전 전 대통령을 두고 "대통령 예우를 박탈 당했으니 전두환씨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며 "여전히 미완 상태인 광주 5·18 민주화운동 진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양심 선언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두환 사망에 대해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하다"고 적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두환씨가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고, 광주 확살에 대한 사과도 없이 떠났다. 역사를 인식한다면 국가장 얘기는 감히 입에 올리지 말라"며 "원통해하고 계실 5.18 유족 여러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은 전한다"고 적었다. 청와대도 이날 오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과 조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조문은)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정을 좀 봐야겠다.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별세했다'는 질문에는 "지금 돌아가신 분이고, 상(喪) 중이니 정치적인 이야기를 그분과 관련지어서 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 않다"고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후보 선대위의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3시간쯤 지난 오후에 입장문을 내고 "윤 후보는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호남 지지율 오르는데...정치적 시험대 오른 尹
전 전 대통령의 별세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무게가 큰 사안이다. 범여권에서는 정치적인 대처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전 전 대통령은 군사 반란으로 집권해 제11, 12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다. 군사 독재의 상징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등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여권은 독재자, 학살자에 반(反)하는 민주화를 기치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야권과 윤 후보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며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겠다.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여부를 결정하라"고 쓴 것도 이런 애매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의 입장 번복도 마찬가지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수준이 향후 민심의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전에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는 지난달 경선 후보 시절 '전두환 옹호 발언' 등으로 논란이 일으켰다. 그는 대선 후보가 되자마자 지난 10일 광주광역시를 찾아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이 발언을 공개 사과했다. 빠른 사과 등의 대처로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호남지역 인사들을 속속 선대위에 영입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호남지역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하는 추세였다. 여론조사업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2~13일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광주.전라 지역에서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8.1%, 윤 후보는 20.1%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광주·전라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63%, 윤 후보는 11%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4.1%, 윤 후보가 13%였다.
한 정치평론가는 "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별세에 대한 대응은 선대위 구성을 두고 막판 조율에 한창인 윤 후보에게 또 다른 정치적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