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여권 텃밭인 호남에서도 지지율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70~80%대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던 호남 민심이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뜨뜻미지근한 지지를 보이는 상황이다. 당 내부에서는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호남에서 예상 밖으로 선전하는 모습이다. 두 자릿수 지지율을 확보한 데 이어, 일부 조사에서는 20%대에 이르는 지지율을 확보했다. '전두환 옹호 발언' 등으로 논란이 일었으나, 빠른 사과 등의 대처로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호남 출신 정치인을 영입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2~13일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광주/전라 지역에서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8.1%, 윤 후보는 20.1%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광주·전라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63%, 윤 후보는 11%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4.1%, 윤 후보가 1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과반을 넘지만, 윤 후보의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가뿐히 넘어 20%대까지 노리는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앞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호남에서 61.9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야권 후보였던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는 2.52%에 불과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호남에서 88.96%를,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10.5%의 득표율을 얻었다. 보수 정당 대선후보가 호남에서 10% 득표율을 돌파한 것은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처음이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 후보의 호남 득표율은 1992년 김영삼(민자당) 후보 4.3%, 1997년 이회창(한나라당) 후보 3.3%, 2002년 이회창(한나라당) 후보 4.9%, 2007년 이명박(한나라당) 후보 9.0% 등이었다.
호남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부진한 것은 당내 경선 이후 이낙연 전 대표의 불복 논란 등으로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한 데다 '대장동 의혹' 등 잇단 설화가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한 의원은 "경선 후유증을 회복하는 단계인만큼,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눌린 것이라고 본다. 또 그간 여러 의혹 등이 불거진 탓에 '일단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호남 대통령을 원했던 지지자들이 많았는데, 단박에 마음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본선에서는 이 후보와 민주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단순 진영 논리를 떠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권 교체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반(反)민주당 정서가 확산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세대별로 살펴보면 20대, 30대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가장 분노하고 있다"며 "이 후보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당이 부동산 민심을 다독일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윤 후보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호남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10일 대선 후보 선출 후 첫 일정으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저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두환 발언'과 '개 사과' 논란으로 악화한 호남 민심 수습에 나선 것이다. 최근엔 광주 출신 정치인인 박주선·김동철 전 의원을 캠프에 영입하는 등 저변을 넓힌 점도 지지율 제고에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 후보가 빠르게 사과를 한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이어 "이와 별개로 현재 호남은 현 정부와 큰 일체감을 갖는다고 보긴 어렵다"며 "호남에선 아직 동교동계의 정서가 강한데 박주선, 김동철 전 의원이 윤석열 측으로 가지 않았나. 이런 점이 윤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