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급증하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통제하기 위해 내년부터 총 대출 2억원을 초과할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DSR이란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에 대한 총 연간 상환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이날 정부는 다음 달 12일부터 내년 4월까지 6개월간 유류세를 20% 인하하는 내용의 물가 안정 대책도 발표했다. 휘발유는 ℓ당 164원, 경유는 116원, LPG는 40원씩 내려갈 전망이다. 같은 날 채찍인 '규제책'과 당근인 '세금 인하책'을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이같은 내용의 대책들은 모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함께 확정한 내용이지만, 민주당의 태도는 크게 엇갈렸다. 유류세 인하엔 적극적이었던 반면, 가계대출 규제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했다. '대출 절벽'으로 인한 실수요자 피해를 막을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말과 최소한의 보완책만 내놓고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온도 차는 정부가 여당과 정책을 조율하는 최종 관문인 당정협의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날 오전 열린 물가안정 대책 회의에는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이들은 유류세 인하 폭을 당초 정부가 제시한 15%에서 역대 최고 수준인 20%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반면 하루 전인 25일 열린 가계부채 당정협의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열린 회의는 상임위원회 차원의 당정협의로,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고승범 금융위원장만 참석해 진행됐다. 송 대표, 윤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나오지 않았다. 당정은 "가계부채 관련 리스크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으나, 가장 중요한 DSR 규제 등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후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전세자금, 잔금대출 중단 등 실수요자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의했다"는 내용을 브리핑했다. 당초 예고했던 실수요자 보호대책은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신용대출 한도를 완화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같은 민주당 측의 엇갈린 대응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리당략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 눈치보기를 하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가계대출 조이기에 본격 나선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에 실패한 원죄 때문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대책에 반대는 못하나, 대출 규제로 흉흉해진 민심 이탈을 우려하는 이유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부의 대출 규제에 여당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으로 비춰질 경우, 부동산 민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심리가 당정협의 분위기로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면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미 한 차례 참패했던 만큼, 표심 이반이 우려되는 규제책에 대해선 선 긋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류세 인하는 서민들의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입장에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 지도부가 모두 출동해 정부의 유류세 인하 결정에 '숟가락 얹기'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이날 당정협의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여당 의원들은 유류세 인하를 이끌어낸 당의 결정을 홍보하기 여념없는 모습이었다. 박완주 의장은 "정부가 검토했던 안은 15% 인하였으나, 오늘 당정협의 과정에서 2조5000억원 정도를 추가로 한 20% 인하를 당이 요청했고 정부에서 수용해서 발표를 하게 됐다"고 했다.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수수료 20%를 인하했을 때 하루에 40km를 운행한다고 가정하면 월 2만원 정도 인하된다"고 했다.
세종시 관가에서는 민주당 지도부의 유류세 인하 발표가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류세는 탄력세이기 때문에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30% 범위 내에서 인하할 수 있다. 법 개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당정협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류세 인하 관련 발표는 전적으로 정부의 몫으로 돌리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는 주장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표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세금 인하책엔 팔을 걷어부치는 반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책은 외면하며 면피용 대책만 내놓는 모습"이라며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