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공산권 유럽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인이 재임하던 시기(1988년 2월~1993년 2월)는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동구 공산권 사회가 해체되던 격변기였다.

고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북방외교를 벌여 성과를 냈다. 남북한 유엔(UN) 동시 가입도 그 시기에 이뤄졌다. 북한의 핵 개발로 빛이 바랬지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남북 단일 체육팀 출전 등 남북 대화가 활기를 띠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도 이뤘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사진은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취임사에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공동의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해 7월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이후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89년 2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물론 1991년 8월 알바니아까지 동유럽 7개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1990년 6월 소련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9월 수교했고, 1992년 8월에는 중국과도 국교를 정상화했다.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를 통한 화해 분위기 조성은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노 전 대통령은 스포츠 발전과 남북 스포츠 외교에도 족적을 남겼다. 앞서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노 전 대통령은 외교안보담당 정무 제2장관, 1982년 체육부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거쳤고, 1983년 서울올림픽대회 및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이끌었다.

반드시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당시 노태우 정무장관은 1981년 9월 4일 올림픽 유치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이규호 문교부 장관, 노신영 외무부 장관, 박영수 서울시장 등 관계자들에게 범국민적인 유치 활동을 지시했다. 정부의 올림픽 유치 대책반은 즉시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현장에서 활동할 유치단 구성에 착수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8년 6월 청와대에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IOC 총회를 불과 3주일 앞두고 체육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 등 107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왕성한 유치 활동을 펼친 끝에 1981년 9월 30일 이른바 '바덴바덴의 기적'을 이뤄냈다.

후발 주자였던 대한민국 서울이 52표를 받아 27표에 그친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올림픽 개최는 경제 성장과 국가 대회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꼭 필요했고 경쟁 상대국이 일본이라 국민들은 큰 기쁨을 누렸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1964년 도쿄)에 이어 두 번째, 개발도상국으로는 최초, 세계 16번째로 하계올림픽 개최국 국가가 됐다. 성공리에 끝난 88서울올림픽은 남북 체제 경쟁이 한국의 승리로 끝났음을 알리는 축제였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동유럽에 올림픽 참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쌓인 교분이 외교 관계 수립에도 도움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올림픽 후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자유화를 선언해 대한민국의 국제화에도 기여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